▲자전거로 세계 여행하는 스위스의 클로드 마살러와 함께김성호
스위스 여행객에게 7년 동안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했으면 질릴 텐데, 왜 또 자전거 여행을 하느냐고 묻자 "그냥 자전거 탈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여행객도 "페달을 밟으며 바라보는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고 자전거 여행 예찬론을 폈다. 아일랜드 여행객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느끼는 속도감과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스릴감은 타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고 오토바이 여행 예찬론을 늘어놓았다. 나는 "오토바이나 자전거는 고장 나면 고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위험하지 않냐"며 안전과 자유롭게 혼자 다니는 데는 배낭여행이 최고라고 말했다.
아마도 자전거 여행은 속도는 느리지만 자전거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즐거움과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유가 가져다주는 편안함에 취하게 되는 것 같고, 오토바이 여행은 빠른 속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파노라마식 여행의 쾌감과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오토바이의 기동성이 주는 낭만에 빠져 들게 되는 것 같다. 배낭여행은 어떤 교통수단이든 현지에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고, 걷고 싶으면 걸을 수 있는 등 홀로 다닐 수 있는 자유의 매력이 장점인 것 같다.
처음 만났는데도 생각하는 것이 같아 우리는 그날 아프리카의 밤하늘 아래 의기투합했다. 모두 음악을 좋아하고 아프리카를 사랑하고, 게바라를 그리워하고 넬슨 만델라를 좋아했다. 한결같이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싫어하고, 팔레스타인을 안타까워하고 인종차별을 반대했다.
국적과 나이, 직업, 여행방식, 그리고 여행의 목적지는 다르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이 자유라는 점에서 같았고 세계를 향한 개방성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걸어서 배낭여행하든, 자전거를 이용하든, 오토바이를 이용하든 우리 네 명이 똑같은 것은 또한 홀로 여행한다는 것이었다.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게 만드는 '여행'
처음 만난 우리 네 사람을 하나로 묶는 것은 바로 여행을 통해 얻은 세상을 향한 개방성이다. 여행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기도 하지만, 모든 종류의 편견을 없애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직접 체험을 통해 민족적 편견과 종교적 차별,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민족과 종교, 문화에는 고유의 독창성은 존재할망정 우월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행을 하다보면 깨닫게 된다. 세상의 모든 전쟁과 차별은 바로 이런 다양성을 무시하고 세상을 우열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촉발된다.
젊은 시절의 여행경험이 지도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히틀러와 스탈린, 조지 W 부시는 젊은 시절 뿐 아니라 최고 통치자의 지위에 오를 때까지 자기 나라 이외에는 거의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무솔리니도 병역기피자로 잠시 스위스와 독일에 머물렀을 뿐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평화를 파괴하는 전쟁광이 되거나 독재자가 되었다.
김산과 체 게바라, 윈스턴 처칠, 프랭클린 루스벨트, 간디, 레닌, 호치민, 빌리 브란트는 젊은 시절 여행이든 공부든 망명이든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이들은 모두 자유와 독립, 인간해방을 위한 혁명가가 되었다. 세계화의 시대에 한나라의 지도자가 외국 경험이 없다는 것은 결코 자랑일 수 없다.
젊은 시절의 여행은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여행을 하지 않는 자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라보는 좁은 시야의 하늘은 편견과 차별을 낳고 전쟁을 불러온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교육심리학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는 세계적 지도자와 독재자들의 특징을 비교분석한 <통찰과 포용>이라는 책에서 "진정한 리더는 젊은 시절 해외여행을 통해 견문과 시야를 넓힌다"며 "미래의 독재자들이 대체로 자국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공통된 패턴과는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하워드 가드너는 나아가 "독재자들이 해외여행을 하지 않는 이유는 색다른 환경을 체험하면 자신이 공들여 세워놓은 계획이 복잡하게 엉키고 갈등을 겪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고 독재자의 성향과 여행의 상관관계를 날카롭게 꼬집어 내고 있다.
독일 통일의 아버지이자 동방정책의 창시자인 빌리 브란트는 "여행하는 자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본다"며 "앞을 바라보는 시선은 과거의 유령에 의해서 망쳐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빌리 브란트의 전기를 쓴 독일의 현대사 연구자인 그레고어 쇨겐은 여행을 즐긴 브란트에 대해 "여행하는 사람은 미래를 본다"고 말했다.
지난 1970년 12월 7일 폴란드를 방문한 당시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는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갑자기 무릎을 꿇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역사상 가장 잔혹한 히틀러의 나치즘에 대항해 망명을 전전하면서도 단 한 번도 무릎을 꿇지 않았던 브란트가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 진정한 용기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여행을 통해 세상의 양심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 법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독일을 벗어나지 않은 편협한 울타리가 빚어낸 히틀러의 인종차별주의 및 배타적 세계관과 스웨덴, 노르웨이, 체코, 스페인 등 유럽 여러 나라의 여행을 통해 얻은 브란트의 포용주의와 개방적 세계관의 차이는 역사에서 두 사람을 극명하게 갈라놓았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다른 여행객은 서로를 밀어주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