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암제정길
오후 3시 30분에 봉정암에 닿았다. 해발 1224m의 고도에 위치한 작은 암자는 눈 속에 파묻혀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봄 가을에는 3000명도 더 찾는다는 절 경내는 텅 빈 듯이 고요하다. 다만 일하는 젊은이 한 명이 눈치는 가래로 산사의 적막을 한 삽 한 삽 절 마당 아래로 퍼내고 있었다. 종무소에 가서 4명분의 잠자리를 예약하고는(1인당 만원이란다) 석가사리탑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 보았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적멸보궁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몰라도 내 눈에는 눈 속에서 망연히 조시는 듯 보였다.
@BRI@저녁 공양은 6시였다. 미역국에 김치 그리고 밥이 전부였다. 절에서의 식사는 처음이라 여러 면에서 어색했다. 너무도 단출한 음식수도 그렇고 먹는 방법도 그랬다. 미역국 그릇에 밥 넣고 김치 넣고 훌훌 말아서 먹는 게 다였다. 그래도 다들 잘 먹었다. 동행한 친구들은 말할 것 없고, 같이 식사하는 보살님, 등산객 2명도 한 그릇씩 후딱 해치우고 더 달라고 하였다.
나만 절에 갖다놓은 새색시 꼴이었다. 더구나 밥 말아 먹은 그릇에 물을 받아 마시고 헹구어야 하는데,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고춧가루에 깨소금에 미역 건더기까지 남아있는 그릇에 물을 받아 마시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수행이지만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고통이 되었다. 하나의 사물도 관점에 따라서 의미가 다름을 새삼 깨달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