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과 푸름과 백설. 용대리에서 보는 내설악제정길
시중에 떠도는 우스개로 이글을 시작해 볼까 한다.
한 연세 드신 분이 아내를 잃고 아들 내외에 얹혀(?) 살고 있었다. 아들이 출근하고 난 뒤, 며느리와 단둘이 집에 있는 게 민망하고 또 몸이라도 아프면 그 또한 자식에게 폐를 끼치는 게 될 것 같아, 이런 저런 사유로 틈만 나면 산을 다녔다. 그날도 아침을 느지막이 들고 배낭을 챙겨 며느리에게 '다녀오마' 하고 집을 나서는데, 그날따라 며느리의 심사가 좀 편치가 않았던 모양이다. 시아버지가 현관문을 빠져나가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나지막이 중얼거리게 되었다.
"얼마나 더 사시고 싶어 저럴까, 매일 같이 산행이니."
@BRI@그래서 그런지 대한민국의 산이란 산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주중에는 젊은 백수와 '늘근('늙은'의 고어) 백수'가 산중으로 '할 거리'를 찾아 나서고, 주말에는 일에 지친 피로한 백성들이 '쉴 거리'를 찾아 이산 저산을 헤맨다. 이런 유행(?)을 따름인지 환갑 진갑을 다 지난 네 '늘근 백수'가 신년 들어 설악산을 올라 보기로 작정을 하였다.
전날 내린 강원지방의 대설 주의보가 해제도 되기 전인 새벽 6시, 서울을 출발한 네 중늙은이를 실은 차는 아침 8시30분에 인제군 용대리에 도착하였다. 눈은 그쳐 있었고 적설량은 예상보다 적었다. 주차장이 넓은 식당에 들러 황태국밥으로 빈속을 채운 뒤, 차를 맡겨두고 설악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였다. 시계는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월 초순의 겨울치고 날씨는 포근하였으나, 눈이 깔린 길이 미끄러워 초입부터 아이젠을 차야했다. 주중이라 그런지, 대설 주의보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등산객이 드물었다. 다만 아이들 한 무리가 눈을 뭉쳐 서로 던져고 깔깔거리며 등산로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수렴동 계곡까지 간다고 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어린 것은 예뻐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디엔에이(DNA)가 오랜 진화과정을 통하여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리라. 다행한 일이다. 인구가 준다고 아우성을 치는 마당에 만약 어린 것이 예뻐 보이지 않는다면 인구의 감소는 더욱 급격해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