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의 박철규 선생님박도
박철규 선생님은 강건하신지요? 또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누는 것도 가능하신지요? 만일 그렇다면 박철규 선생님을 만나 뵙고 살아오신 내력, 제자들 이야기, 그리고 참다운 사제관계 등에 대해 말씀을 한번 듣고 싶습니다.
박철규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고 싶은데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연락처를 알려주시거나 박도 선생님께서 한 번 연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월간중앙> 기자입니다. 올해로 만 18년째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기사를 많이 쓰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도와주십시오.
윤석진 拜上
나는 메일을 읽은 뒤, 여수에 계시는 박 선생님에게 전화로 취재 승낙 여부를 여쭙자,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이 이 사회에 한 미담이 된다면 기꺼이 응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마침 나도 이참에 선생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일어서 메일로 답신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윤 기자님!
먼저 제 글을 읽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은 오래 전에 서울을 떠나 전남 여수 아드님댁에 계십니다. 윤 기자님 전화를 받고 선생님에게 전화로 취지를 말씀드리자 우리들의 이야기가 이 사회에 한 미담이 된다면 취재해도 좋다고 허락하셨습니다. 만일 취재하신다면 저도 동행하여 오랜만에 선생님 뵙고 인사도 올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박도 올림
취재일이 9월 6일로 결정되었다. 서울과 여수는 워낙 먼 거리라서 시간단축을 위해 가는 길목인 경부고속도로 오산 나들목에서 만나기로 했다.
선생님을 뵈러가는 날 새벽 4시에 잠이 깼다. 안흥마을에서 첫 차를 타고 원주로 가서, 다시 평택 가는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오산에서 내렸다. 내가 사는 안흥 고장의 명품은 찐빵과 한우와 더덕인데, 찐빵은 이미 택배로 보내드린 바 있고, 한우는 날씨 탓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어서 횡성에 아는 더덕가게에다가 부탁했더니, 가게 주인이 더덕선물상자를 분홍빛 보자기에 싸서 횡성 정류장으로 들고 나와 건네받았다.
약속시간 오산 톨게이트에 나타난 <월간중앙>의 윤 기자와 권태균 사진부장은 그 보자기를 들고 서 있는 내가 영락없이 친정부모를 찾아가는 딸의 모습 같다고 했다. 그랬다. 모습만이 아니라 내 마음도 첫 친정나들이를 하는 새댁처럼 한껏 들떠 있었다.
핸들을 잡은 권 부장이 시속 100㎞로 계속 가속페달을 밟았으나 오후 2시를 넘겨서야 여수 율촌면에 닿았다. 10년 전, 선생님을 찾았더니 굳이 순천까지 나오셔서 댁으로 방문은 초행길이었다. 선생님은 우리 일행이 궁벽한 시골길에서 헤맬까 마을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뾰족탑이 높은 교회에서 기다리셨다. 늦은 점심으로 허기를 면한 뒤 바닷가로 갔다.
인연
내가 선생님을 처음 뵌 날은 1961년 봄, 중동고교 입학시험장에서다. 첫 시간 국어시험 답안지를 다 메우고 난 뒤 시간이 남아서 감독교사를 바라보자 훤칠한 키에 감색 양복을 입은 곱슬머리의 미남 선생님이 교단 위에서 지키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만일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저 분을 따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