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밥쌀용 미국산 칼로스쌀을 수입하자 성난 농민단체 회원들이 항의 시위를 벌였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저녁 6시. 퇴근이다. 7시까지 우리 농산물 직거래장터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오늘은 한 주에 한 번 있는 국산채소 사는 날이다. 오늘을 놓치면 또 한 주일을 밥 한 그릇으로 버텨야 한다.
지난주엔 비가 많이 와서 채소시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파장이었다. 조금만 늦어도 살 수 없으니 오늘은 일찍 서둘러야 한다. 그나마 직장 다니는 사람을 위해 저녁에 장이 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처음 한미FTA가 타결된 후 10년 동안에는 수입농산물 값이 워낙 싸서 다들 수입산을 사 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국산의 반도 채 안 되는 값에 유기농산물까지 수입되는 통에 다들 우리나라 농업이 망한다고 농민들이 시위를 하면 혀를 끌끌 차며 '그러게, 진작에 국제경쟁력을 키울 것이지'라며 비웃었다.
그러나 10년 전 태풍 '앳포카스(atfokasu; USA-Ko FTA를 거꾸로 조합함ㆍ편집자 주)'로 인해 큰 피해가 생기고 나서 그나마 있던 농지가 다 쓸려 가니 기다렸다는 듯이 농지에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연재해에 무방비인 농업을 하느니 자연재해에도 끄떡없는 공장으로 바꾸자는 정부와 기업들의 주장이 비로소 먹혀들어갔다. 그래도 싼 농산물을 얼마든지 수입할 수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정부의 홍보를 철썩 같이 믿었다. 사실 한미FTA협상 이후 농산물값이 엄청나게 싸졌기 때문에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국산채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그러나 '앳포카스' 이후 세계적으로도 기상이변이 심해져 농산물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나라마다 자기 나라 국민 먹일 식량도 없다며 갑자기 수출량을 대폭 줄여버렸다. 지금껏 미국산 쌀, 호주산 쇠고기, 남미산 과일, 아시아산 채소를 사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우리나라는 졸지에 식량 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20년 전 180만ha이던 농지는 이제 50만ha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나마 논은 20만ha이만 유전자조작벼를 심던 15만ha가 아직 정화되지 않아 5만ha 남짓한 논에서 생산하는 쌀을 1인당 5kg 정도씩 가을에 배급받는다. 이건 그야말로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두어야 한다.
인구의 반 이상이 농민이었던 시절도 있었다는데 이제 100만 명도 채 안 되는 농민들이 그야말로 산비탈이나 외진 곳, 공장이 들어설 수 없는 땅에 조금 짓는 농사다 보니 국산채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다.
거기다 직거래 장터다 보니 가격도 시중에 파는 수입농산물보다 훨씬 싸 요즘은 이 채소시장이 가장 큰 인기다. 여전히 시중 농산물값에 영향을 받지 않고 생산비 기준으로만 파는 농민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1990년대 말부터 약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20만 이상의 도시민들이 귀농했다고 한다. 그들과 원래 땅을 지키던 농민들은 한미FTA에서 농업을 지키기 위해 전통적인 가족농·소농 방식을 고집하며 땅을 지켜왔다.
한 가구당 고작 2000평 남짓 농사를 짓다 보니 그렇게 생산량이 많지는 않다고 한다. 그래도 자신들이 먹을 걸 남겨두고 나머지는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인근 대도시에 와서 직거래장터를 열어 도시민들에게 판다. 그리고 한 사람이 사재기 못하도록 양까지 제한해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사갈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