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고물상, 여기 있습니다!"

[인터뷰] '컴퓨터강사서 고물상 대표된' 이석수씨... "고물산업 선두주자 꿈꿉니다"

등록 2006.07.08 09:58수정 2006.07.1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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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수씨.
이석수씨.송상호
이 사람을 만나면 두 가지 편견을 당장 깨게 된다. '고물상은 지저분하다', '고물상은 나이 많이 든 사람이나 한다'.


내가 만난 고물상 중에서 이렇게 깨끗한 고물상도 처음이고, 이렇게 젊은 사장도 처음이다. 안성시 '석수자원' 대표 이석수(32)씨가 바로 그다.

26세부터 고물상 사장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니 할 말 다했다. 그가 이 길에 접어든 사연은 두 가지 편견을 깨는 것만큼이나 신선하다.

컴퓨터 강사 버리고 고물상이 된 까닭...부끄러워 밤에만 다니기도

청양에서 손꼽히는 부자로 소문이 나있던 처갓집에 그가 처음 선뵈러 가던 날 "아니 어디서 술집 웨이터 같은 놈을 데려왔니? 나야 한 개도 마음에 안 든다. 가진 것 없고, 홀쭉하고 배운 것도 없고. 하다못해 안경 쓴 거 까지"라는 장인어른의 말은 그의 평탄치 않은 결혼 생활을 예고해준다.

결혼을 하게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1년을 끌다가 드디어 장인어른의 승낙이 떨어졌다. 단, 결혼하면 고물상을 하는 조건으로. 고물상의 비전을 나름대로 점치고 있었던 장인어른의 신신당부였다.


장인어른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노력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고물상 사업을 하도록 사위에게 유언으로 남기셨으니, 그에겐 꼼짝없는 운명의 길이 될 수밖에.

간절히 원해서 하는 사업이라도 힘들 텐데 본인의 의지가 아닌 타인과의 약속으로 시작한 일이니 처음부터 순탄치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번한 일. 그는 서울에서 컴퓨터 강사로 일하면서 짭짤한 수입을 벌던 총각 시절을 보내고 결혼하자마자 안성으로 내려와 고물상 사장 수업에 돌입했다.


"처음엔 낮에 다니는 게 부끄러워서 캄캄한 밤 8시에서 그 다음날 새벽 2시까지 고물 수집을 했지요. 다른 고물상 사장님 밑에서 한 3개월 정도 착실하게 고물상 일을 했지요. 남의 터에서 고물상을 하다가 땅주인으로부터 나가달라는 소식을 듣고 앞이 깜깜했던 적도 있었죠. 다행히 현재의 부지로 이사를 와서 '석수자원'으로 시작하게 되긴 했지만요."

행간에서 수많은 맘고생이 팍팍 묻어난다.

맨홀에 빠져 3시간 발버둥 친 사연

지금의 '석수자원'도 우여곡절 끝에 많은 빚을 떠안고 시작하게 됐다. 칠순이 넘은 노모와 아내, 그리고 자녀 두 명을 부양해야 하는 그에겐 모든 것이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래도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주어진 길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 번은 공사현장에 출동해서 일을 하려하니 사장이 안 오고 직원이 왔냐고 하지 뭐예요. 나이가 적다고 그러지 않겠어요. 허허허허. 그리고 몇 년 전엔 시골 할아버지가 고물로 주신 자전거를 타고 오다가 맨홀에 빠졌지요. 브레이크가 안 듣는 자전거이었거든요.

빠지자마자 기절을 했고, 깨어나서 3시간 정도 헤매다가 겨우겨우 나오게 되었지요. 얼굴에 피가 흠뻑 묻은 채로 거의 기다시피하며 한 시간 거리의 병원에 가게 됐어요.

워낙 피가 많이 나고 위험하니깐 안성의 병원에서 치료하기 힘들어 천안 단대 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여유 응급차가 없어서 아내가 몰고 온 2.5t 트럭을 타고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죠.

아내가 임신 7개월 째 있었던 일이라 생각하면 더욱 아찔하지요. 그 일 덕분에 한동안 일을 못하니 거래처가 다 끊기는 등 한 동안 힘들었었죠."

직원은 없다... 다만 '동지'가 있을 뿐

지금은 직원이 3명이나 된다. 사실 그에겐 직원이 아니다. 그의 나이와 비슷한 그들은 삶에서 지치고 지친 이들로서 그와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하기로 한 '동지'이다.

사장과 직원의 관계가 아니다보니 '석수자원'에선 '명령과 복종'보다는 '자율'이 일상이 된다. 그래도 다른 어디보다도 고물상은 신나게 돌아간다. 그들에겐 공유되는 비전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동지들이 각 분야에서 고물상의 거상이 되는 것. 그래서 장차 고물산업의 선두주자가 되는 것이다. 있는 멤버들이 모두 잘 살 수 있는 길을 서로 모색해가는 중인 게다.

생업과 공동체가 함께 이루어지는, 보기 드문 곳이다. '환경과 재활용'이 시대의 대세인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꿈꾸어 볼 수 있는 비전이지 않는가.

내 힘의 원천은 '아내'

"솔직히 원해서 한 일이 아니니 힘들 때마다 그만두고 싶었을 텐데 그래도 이겨낼 수 있었던 원천이 뭘까요?"라는 질문에 그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바로 대답을 한다.

"제 아내 덕분이죠. 제가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아내는 제 옆에서 말없이 빙그레 웃으며 든든히 자리를 지켜 주었죠. 제 아내가 저와 나이가 같은데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누나 같아요. 허허허허."

그래서 그는 아내가 한없이 고맙기만 하다. 그에게서 아내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

"지금은 누구보다도 저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땀 흘리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경구가 절로 떠오른다. 노동을 회피하는 요즘의 젊은 세대를 생각하면 정말로 존귀한 모델이 아닌가 싶다.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마치 대어를 잡은 어부가 느끼는 '만선의 기쁨'이 군데군데 가득하다.

덧붙이는 글 | 알아두면 좋은 재활용품 고물상 가격

▲파지 : kg당 50원
▲공병 : kg당 60원(소주병 30원, 맥주병 40원)
▲캔류 : kg당 130원
▲헌옷 : kg당 150원('석수자원'이 많이 취급하는 품목)

* 안성평택 벼룩시장에도 송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알아두면 좋은 재활용품 고물상 가격

▲파지 : kg당 50원
▲공병 : kg당 60원(소주병 30원, 맥주병 40원)
▲캔류 : kg당 130원
▲헌옷 : kg당 150원('석수자원'이 많이 취급하는 품목)

* 안성평택 벼룩시장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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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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