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눈의 기자들이 다시 찾은 대추리

['News21 프로젝트' 돕기 그 일곱 번째 이야기] 18일,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시위현장

등록 2006.06.20 18:34수정 2006.06.20 18:34
0
원고료로 응원
다시 찾은 대추리

모두들 한참 다음날 새벽에 예정된 프랑스와의 축구경기 이야기가 한창이었던 18일, 나와 바네사(Vanessa Gregory), 맷(Matt Vree), 킴(Kim Perry), 세 명의 파란 눈의 기자들은 이른 아침 용산역에서 만나, 대규모 집회가 예정된 평택으로 향했다. 대추리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이중삼중의 검문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 방송사PD의 도움으로 노란색의 보도(Press)완장을 얻고, 2차 검문까지는 성공했지만 결국 정식으로 발급된 기자증이 없다는 이유로 세 번째 검문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심지어는 '경찰'마크가 붙어있는 경찰청 소속의 배급트럭도 전 탑승자의 신분증 검사 없이는 내부 진입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a 대추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전 차량을 검문중인 경찰

대추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전 차량을 검문중인 경찰 ⓒ 이정석

시위대 내부 진입은 절대 불가능

결국 우리 일행은 내부로의 진입을 포기하고, 12시부터 전국 곳곳에서 노동조합, 시민단체들이 평택과 바로 경계를 같이하는 충남 아산의 둔포에서 집결한다는 소식을 듣고 둔포로 향했다. 택시는 일단 돌려보내라는 말에 타고 왔던 택시까지 떠난 후였기에, 뻔뻔함을 무릅쓰고 마을 밖으로 나가는 주민의 트럭 뒤에 몸을 싣고 신궁리 입구의 큰길까지 향했다. 내려오는 길에 첫 번째 검문이 이루어진 바리케이드 앞에서는 마을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 항의하는 듯 계속해서 경적을 울리는 차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위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내부로의 진입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a 검문에서 막히자 주민의 트럭을 얻어타고 나오고 있는 맷(Matt)

검문에서 막히자 주민의 트럭을 얻어타고 나오고 있는 맷(Matt) ⓒ 이정석

택시를 잡아타고 도착한 둔포는 아주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너무 일찍 도착한 탓인지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기에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기로 했다. 하지만 그 작은 마을에서 커피를 마시며 쉴 수 있는 곳은 깔끔한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이 아닌 아담한 다방이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정통 다방식 커피를 함께 비운 후, 결의대회 예정지인 둔포 서부농협지부로 향했다.

a 시위대의 일원으로 참여한 미국인 영어강사와 인터뷰 중인 킴(Kim Perry)

시위대의 일원으로 참여한 미국인 영어강사와 인터뷰 중인 킴(Kim Perry) ⓒ 이정석

둔포 서부농협지부에서 열린 결의대회

사람들이 속속 모이고 있었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서울청년단체협의회,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전국화학섬유노동조합, 금속노동조합, 전국택시조합 등 많은 단체들이 모여서 대추리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청년, 중장년층 뿐 아니라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함께한 아이들, 심지어는 자신의 제자와 동행한 미국인 영어교사도 이들과 함께했다. 나와 세 명의 미국 기자들은 집회에 모인 이들을 인터뷰했다. 이미 상공에는 경찰헬기가 순찰을 시작하고 있었다.


논길을 뚫고 마을을 향해

오후 1시가 조금 넘자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에 동참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은 논길을 따라 대추리로 향했다. 큰 도로에서 조그만 길로 진입해 논길을 따라 대추리까지 향하려는 듯했다. 이들은 깃발과 함께 열을 맞춰 시골길을 가로질렀다.


a 논길을 따라 마을로 향하는 시위대

논길을 따라 마을로 향하는 시위대 ⓒ 이정석

약 20분,30분 정도 계속 걸었을까? 드디어 이들의 길을 가로막는 경찰병력이 보였다. 방패로 겹겹이 앞을 막고 있었다. 경찰 병력 앞에서 멈춘 시위대의 대표는 방송으로 "우리는 평화로운 시위를 하러 온 것이니 길을 비켜달라, 지금 경찰 여러분은 대한민국 국민의 뜻이 아닌 미국의 뜻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길을 터줄 것을 요구했다. 움직임이 없자 시위대는 구호에 맞추어 방패를 앞세워 전경들로 겹겹이 포개진 방어벽을 밀었다.

첫 대면 이후, 시위대의 작전: 여러 갈래로 나누어 진입하기

여의치 않자 시위대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다른 방향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두, 세 갈래로 나뉘었지만, 이윽고 다섯 개가 넘는 갈래로 나뉘어 논두렁을 헤치며 마을로 향했다. 이 때부터 경찰 병력은 무전을 통해 교신하며, 빠른 병력 재배치를 위해 바빴다. 시위대는 막히면 다른 길로 돌아서 또 진입을 시도하고, 경찰 병력은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병력 이동을 통해 다시 방어막을 치는데 급급했다.

a 시위대를 막기위해 서둘러 이동 배치중인 경찰

시위대를 막기위해 서둘러 이동 배치중인 경찰 ⓒ 이정석


a 논길을 따라 이동중인 시위대와 잠시 쉬고있는 아이와 엄마

논길을 따라 이동중인 시위대와 잠시 쉬고있는 아이와 엄마 ⓒ 이정석

꽤나 긴 장정이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여러 갈래로 길을 나누어 마을로 진입하려는 시위대의 노력은 계속되었고, 나와 세 명의 기자들은 이들을 따라다니느라 바빴다. 이들은 계속해서 경찰의 방어벽을 피해서 진입을 시도했고, 결국 파괴된 수로 위에 철조망이 자리잡은 민간인 출입 제한구역 코앞까지 도착했다.

a 철조망 넘어로 배치되어있는 군병력

철조망 넘어로 배치되어있는 군병력 ⓒ 이정석

군 병력과 마주친 시위대

오후 4시경부터 이들은 사물놀이 연주와 함께 노래와 구호 등을 외치며 철조망이 쳐진 수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배치된 군 병력을 마주한 채로 시위를 벌였다. 상공에는 다섯 대의 군 헬기와 하나의 경찰 헬기가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그 중의 한 대는 애국가를 방송하며, 불법집회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군 영유지를 침범할 때에는 군 형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된다는 방송도 함께하고 있었다. 막히면 돌아서 피하고를 반복하던 시위대를 쫓던 경찰은 오히려 뒤늦게 도착해 군인들을 마주보며 시위를 벌이는 시위대의 퇴거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 병력 사이의 신경전이 오가기도 했다.

a 먼저 자리잡은 시위대와 퇴거를 요구하는 경찰과의 몸싸움

먼저 자리잡은 시위대와 퇴거를 요구하는 경찰과의 몸싸움 ⓒ 이정석

월드컵 보러 갈거야

꽤 재미있는 대화가 오갔다. 한 시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너희 때문에 겁나게 돌아왔어. 힘들어 죽겠거든? 너희가 안 그래도 축구 보러 집에 갈 거니까 보채지 좀 말고 너희도 좀 담배 한 대 피면서 쉬어라. 너희가 자꾸 막아서 이렇게 돌아온 거니까 너희도 좀 기다리라고!"

오후 다섯 시 경이 되자 여러 갈래로 나뉘어 시위를 진행하던 시위들은 수고했다며 서로를 격려하며 시위를 평화롭게 마쳤다. 이들은 다시 평택역에서 그 동안 진행되어왔던 촛불집회의 예정을 알린 후 발걸음을 돌렸다. 나를 비롯한 네 명의 기자들의 팔과 얼굴은 발갛게 그을려있었고,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a 시위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지쳐서 쉬고있는 킴(Kim)과 바네사(Vanessa)

시위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지쳐서 쉬고있는 킴(Kim)과 바네사(Vanessa) ⓒ 이정석

촛불집회는 계속된다

길이 경찰 병력 수송 차량으로 막혀있었던 까닭에, 어렵게 또 '히치하이킹'을 통해 어렵게 얻어 탄 차를 타고 7시 30분경 도착한 평택역에서는 이미 촛불집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미 벌겋게 그을린 피부에, 땀에 흠뻑 젖어 지친 기색이 역력한 바네사, 맷, 킴, 세 명의 미국 기자들은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열정적이게 할까라고 감탄하며, 무려 다섯 시간이 넘게 걸어 다니며 시위를 진행했던 시위자들의 지치지 않는 체력에 놀라는 눈치였다.

9시경 용산역에 도착한 일행은 숙소로 돌아가 간단한 샤워를 마친 후, 갈비를 먹으러 숙소 근처의 명동에 한 음식점으로 향했다. 꿀맛 같은 갈비와 시원한 한잔의 맥주로 하루의 피로를 푼 후,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나는 경찰과 대치하던 중 한 시위자가 이야기했던 그 문제의 '한국 VS 프랑스' 월드컵 경기도 볼 수 없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NEWS 21' 프로젝트는?

'NEWS 21'은 저널리즘 교육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카네기재단 후원으로 기획된 프로젝트로 미국 내 USC(University of South California), North Western, Columbia, UC Berkeley 등 4개 대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들 대학교에서 선발된 학생들은 911테러 이후의 미국인들이 인식하는 테러의 위협, 미국의 대외 안보 정책 등 각기 다른 여러 가지 테마들을 다루게 된다.

이 중의 일환으로 UC Berkeley에서 진행하는 'News 21 : South Korea' 프로젝트에는 지난 5월 버클리 대학원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취득한 Matt, Vanessa, Katie, Kim, Catherine 등 5명은 기자 활동경력이 있는 석사학생들로 구성됐다.

덧붙이는 글 | 서강대학교에서 신문방송을 전공하고 있는 4명의 학생들은 (이정석, 이성현, 유대근, 신은조) 이들의 인터뷰 스케줄을 잡는 일부터 인터뷰 과정에서의 통역, 그리고 취재 과정 중에 생기는 에피소드 등의 기사화, 다른 각도에서의 취재 등 이들의 취재활동 전반에 걸쳐 함께 하고 있다. 

News21 South Korea팀은 네티즌 여러분들의 참여도 환영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보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래 블로그를 방문하시기 바라며, 각각의 주제로 올라온 게시물 아래에 답글의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포스트할 수도 있다. 

http://news21usmilitaryabroad.typepad.com/news21rokers/

덧붙이는 글 서강대학교에서 신문방송을 전공하고 있는 4명의 학생들은 (이정석, 이성현, 유대근, 신은조) 이들의 인터뷰 스케줄을 잡는 일부터 인터뷰 과정에서의 통역, 그리고 취재 과정 중에 생기는 에피소드 등의 기사화, 다른 각도에서의 취재 등 이들의 취재활동 전반에 걸쳐 함께 하고 있다. 

News21 South Korea팀은 네티즌 여러분들의 참여도 환영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보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래 블로그를 방문하시기 바라며, 각각의 주제로 올라온 게시물 아래에 답글의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포스트할 수도 있다. 

http://news21usmilitaryabroad.typepad.com/news21rokers/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5. 5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