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남소연
어느 날 마을이 텅 빈 것을 알고 고독이란 말을 이해할 수 없는 나이임에도, 고독이란 단지 외롭고 쓸쓸한 느낌이 아니라 슬픔과 공포가 뒤섞인 공황상태라고 생각하던 그는 여닫이문을 열고 나타난 '그녀'에게서 세상에서 남겨진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얻었다. 그녀는 그때까지 그가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와 함께 사는 할아버지가 그의 '적수'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의 기억은 곧바로 그 마을에 살던 사람들과 그 마을을 방문하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김진송이 기억의 골짜기를 샅샅이 뒤져 떠올린 이름은 처음으로 육체적인(?) 친밀감을 느끼게 해준 홍씨 아줌마, 잊고 싶은 기억의 주인공 쌍둥이 형제, 무지하게 좋아했던 또래 수진이,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사촌형 등이다.
그의 기억 속에는 별장이 매우 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 그 별장은 당시 권력자였던 장택상의 것이었다. 김진송이 태어나 가장 먼저 들었던 권력자의 이름인 장택상은 해방 후 수도경찰청장, 제1관구 경찰청장과 외무부장관,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이다. 찔레꽃 나무로 담장이 둘러쳐진 별장은 넉넉한 우물이 있어 그의 집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물을 퍼다 먹었던 곳이기도 했다.
김진송은 별장은 이상향의 실체였으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기억의 장소가 별장이라는 사실에서 "부와 권력이 기억마저 지배할 수 있다"며 그가 살고 있던 공간에 존재했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장소는 아니라고 기억한다.
플래카드까지 걸며 재개발 경축하는 나라
김진송은 왜 '기억의 재현 프로젝트'를 시작했을까. 티스푼 없이 눈대중으로 배합비율을 맞춰 커피·설탕·크림을 넣고, 컵을 흔들어 섞은 커피 잔을 건넨 후 난로 속에 장작을 던져 넣는 그에게 물었다.
"자신이 살던 곳이 없어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마치 비 온 뒤 마당에 떨어진 나뭇잎을 비로 쓸어버리듯 너무도 쉽게 살던 곳을 부숴버리죠. 오죽하면 아파트 재개발 허가가 나왔다며 플래카드까지 내걸며 '경축'하잖아요."
그는 기억을 거슬러 유년을 떠올릴 때마다 항상 무엇인지 모를 거부감에 맞닥뜨렸다고 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끄럽고 불안하고 무시무시한 실체….
"맑은 하늘을 보면 왠지 슬퍼지고, 옛날 것들이 없어지는 것을 보면 왠지 불안해지고, 자신도 알지 못했던 성적 호기심의 실체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궁금해지고 하는데… 기억은 이런 과거의 나와 만나 정서적 안도감을 주는 일종의 치유과정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렇다. 그가 과거를 찾으려는 것은 일종의 위안을 얻으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기억의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사회라는 것을 깨닫는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내밀한 기억들조차 그 주체는 유감스럽게도 내가 아닙니다. 나는 사건을 만들 수 없습니다. 사건이 이미 사회적이잖아요. 나는 모든 사건에 대한 경험과 사건의 결과가 가져다 준 행복과 불행의 느낌만을 기억할 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무차별식 흔적 지우기는 노량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국이 다 그랬다는 데 있다고 그는 말했다.
김진송은 이번 책을 쓰면서 독일 비평가 벤야민의 <베를린 유년 시절>을 무척 베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했다.
"베를린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습이 똑같습니다. 파리도, 일본의 도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만 개판으로 깨졌습니다. 실제 노량진에 가보니까 깡그리 없어져 벤야민식 작업이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혼재된 세상과 맞닥뜨린 곤혹스러움
김진송은 기억을 재현하기 위해 흩어진 기억을 모으고 유년의 마을을 다시 찾아간다. 그는, 잠실에서 여의도를 향하는 올림픽대로를 달리다 동작동을 넘어서 여의도가 보이는 우측으로 63빌딩의 번쩍거리는 풍경이 압도하기 시작하고, 왼쪽으로 '한냉'이라는 글씨의 굴뚝(?)이 있는 수산시장이 있는 그곳, 노량진을 딱 두 번 찾아갔다고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