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집에서 박경원時事通信社
박경원은 이 자리에서 신념에 찬 여권신장론자이자 공산주의 사상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던 동료 기타무라 겐코와 함께 일본 사회가 여류 비행사를 '콤팩트 파일럿'('화장하는 비행사'로 여류 비행사를 비하하는 언론의 유행어)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아시아 항공계가 서구에 뒤처지고 있다고 장관을 은근히 통박했다. 그 발언은 미모의 '에어 걸' 모토야마 에이코에게 한눈을 팔던 고이즈미는 물론이고 박경원을 소개한 비행학교장 아이비타 모츠까지 당황하게 했다.
박경원은 그 이후 고이즈미와의 염문설을 유포한 언론에 공식적으로 항의하기까지 했다. <도쿄 니치니치 신문>은 박경원의 고국 방문 계획에 대한 소개 기사에 "고이즈미 체신장관의 후원으로"라는 한 줄을 넣었다가 박경원의 거센 항의를 받고 일주일 뒤에 정정 기사조의 박경원 인터뷰를 내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비행은 고향을 비롯해 다른 후원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 몇 시에 비행해야 한다는 구속이 없습니다. 그래서 매우 마음이 편안합니다. 11월 20일경에는 비행기 정비가 완료되기 때문에 야외 비행 연습을 할 겁니다. 상태가 좋으면 그대로 날아갈지도 모릅니다."
- <도쿄 니치니치 신문> 1931년 10월 29일, <건널 수 없었던 해협>에서 재인용
박경원이 비행기를 불하받은 것은 고이즈미의 '은혜'가 아니라 돈도 없고 끈도 없는 박경원을 도우려는 친구 기타무라 겐코, 그리고 박경원과 같은 실력 있는 비행사를 보유한 비행학교의 이미지 제고를 노렸던 비행학교장 아이비타 모츠를 통한 박경원의 끈질긴 청원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비행할 수도 없는 쓰다만 군용기를 불하받은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수리와 정비 및 비행 경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끈' 역할을 해준 기타무라 겐코는 복막염으로 사망하고 하마구치 내각이 이누카이 내각으로 바뀌면서 고이즈미가 사임해 버림으로써 박경원의 고국 방문 비행 계획은 무산되고 만다.
정혜주 기자는 박경원 평전에서 추도록 등을 인용하며 박경원이 일본인들에게 여신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썼다. 그리고 박경원이 일장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은이의 말을 인용하여 마치 그것이 책의 결론인 것처럼 쓰고 있다.
그러나 박경원 평전은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는 책이 아니라, 바로 그런 문제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일장기와 A급 전범들의 꽃다발에 갇힌 박경원의 인간으로서의 참모습, 조선 여성으로서의 참모습을 복원하고 재평가하는 것이 이 책이다.
정 기자는 책이 자료로 인용한 일본인들의 자의적 논리는 그대로 수용하고, 오히려 일본인으로서 그런 자의적 논리를 논박하고 있는 책을 정반대 논리의 전거로 둔갑시키는 곡필을 저지르고 있다.
우리는 보고 또 보아도 가슴이 미어지는 손기정의 고개 푹 숙인 '항일'과 대비하여 일장기를 들고 웃고 있는 박경원에게 '스마일 친일'이라는 새로운 잣대라도 들이대어야 하는가. 그 사진, 그리고 그 장면을 그대로 살렸다는 <청연>의 장면을 보며, 그리고 영화 <호타루>와 조선인 카미카제 대원들을 오버랩하면서 가슴을 치고 통곡해야 한다.
친일의 멍에를 이 여자에게 들씌우지 말라. 그보다 더 흉측한 수사로 청산해야 할 21세기의 제국주의, 가부장 권력, 국가, 자본의 오크와 우르크하이 떼가 아직 저렇게 들끓고 있다. 박경원 최후의 사진, 그 일장기를 말소하고 싶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친일 논란과 관련하여 이 기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과 최초 논란을 다룹니다.)
| | | "박경원 후원자는 의친왕 이강" | | | [발굴 인터뷰] 고 서웅성 비행사 며느리 이병희씨 | | | |
| | ▲ 고 서웅성 비행사 며느리 이병희(62)씨와 서웅성 비행사의 사진 | ⓒ홍대욱, 이병희 | 과연 박경원이 1시간 비행 연습에 120원(약 쌀 24가마)이 든다는 비행학교 수업료 등의 비용을 어떻게 조달했는지가 의문이다. 박경원 평전을 비롯한 여러 자료에서 이왕직장관(대한제국 황손의 대외 업무을 담당하는 관직) 그리고 학부장관 이용직을 통한 '존귀하신 어른'의 후원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박경원 평전은 이에 대해 '영친왕 이은'설을 제기한다.
그런데 최근 박경원의 후원자가 의친왕 이강이라는 증언이 나와 주목된다. 의친왕 이강은 고종 황제의 다섯째 아들로 상하이 탈출을 시도한 대동단 사건 등 독립운동에 관여한 황손이다.
다치가와 비행학교를 졸업한 박경원의 후배로 항공협회 회장을 지낸 서웅성(1906~1997) 비행사의 며느리 이병희씨는 만년에 서 비행사가 "박경원의 후원자는 의친왕 이강"이라고 증언했다고 지난 12월 22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미 서웅성 비행사는 <한국일보> 1981년 7월 12일치 '끝내 못 이룬 조국 하늘 비상의 꿈'(최성자 기자)이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증언한 바 있다.
"학자금에 쪼들리던 박경원이 '어느 존귀하신 어른이 사람을 보내어 학자금을 대주마 했다. 그 어른 이름은 절대 세상에 공표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하며 몹시 기뻐하던 생각이 난다."
이 기사에서 서 비행사는 '존귀하신 어른'이 이용직이라고 증언했지만 실은 의친왕 이강이라고 가족들에게 밝혔다는 것이다.
"하루는 제가 여쭈었습니다. 박경원이 당시 여자 신분으로, 그것도 식민지 치하에서 어떻게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 비행사를 할 수 있었느냐고요. 아버님께서는 혹시 거론되는 분들에게 누를 끼칠까봐 밖에서는 일체 말씀을 안 하시고 그 분은 바로 '이강공'이라고 가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병희씨는 1945년생으로 김포시에서 살고 있다. '비행' 집안답게 두 딸이 모두 국내 항공사의 여승무원으로 근무한다. 서웅성 비행사는 다치가와 비행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양정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손기정을 지도하기도 했다(위의 가운데 사진은 양정 육상 선수들이 도쿄-요코하마 역전 경주를 우승한 기념으로 다치가와 비행학교에서 비행기를 태워준 후 찍은 사진으로 맨 오른쪽부터 서웅성, 손기정이다).
서웅성 비행사는 이정희를 후원하기도 했고 박경원의 여의도 비행장 도착을 기다리는 군중에게 마이크로 현장 중계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의 맨 오른쪽 사진은 1955년의 서웅성, 이범석, 조병옥, 신익희(왼쪽부터). / 홍대욱 | | | | |
덧붙이는 글 | 홍대욱 기자는 <박경원 평전> 한글판(출간예정)을 번역했습니다.
한겨레신문의 개인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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