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북스
최규석의 <습지생태보고서>(거북이북스). 사실 작가가 이전에 무슨 작품을 했느냐를 아는 것은 지금 보고 있는 작품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알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작가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최규석은 많은 화제를 낳은 <아기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그린 작가다.
<습지생태보고서>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있는 작품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젊은 작가의 시선과 철학이 살아 있는 만화다.
3대째 내려 온 가난으로 궁상스러운 최군, 어딘가 모자라 보이지만 왠지 정이 가는 재호, 마음이 약해 늘 피해만 보는 정군, 작업 이외의 인간적인 욕구에는 무관심한 몽찬. 이들은 지방의 만화학과 대학생으로 군식구 사슴과 함께 반 지하 단칸방에서 같이 부대끼며 살아간다. 비만 오면 반지하 방에 물이 고인다고 해서 습지라고 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다만 불편한 것이다? 고도의 자본주의 속에서 가난은 불편과 부끄러움을 넘어 마치 죄를 진 것 같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인정 많고 유쾌한 삶을 역설한다. 가난하지만 꿈이 있어 만족하고 사는 최군. 그러나 친구들로 인해 잘 데가 없는 좁은 방을 보고 주절거리듯 독백한다.
"…성공하자! 지평선이 생성되는 방에서 매일매일 천 바퀴씩 굴러다녀 줄 테다." - 14화 '안분지족(安分知足)' 중에서.
"길거리에 나앉을 정도만 아니라면 오랜 가난은 여러모로 좋은 점이 있다. 가져 본 적이 없으니 소유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돈 쓰며 놀아본 적이 없으니 유흥과 공부를 놓고 고민할 일이 없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좀 낫게 사는 친구들보다 적은 용돈이나마 늘 여유가 있고, 더 힘든 녀석을 만나면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는 호기를 부릴 수도 있다." - 45화 '가난의 효용' 중에서.
가난한 그들이지만 현실을 도피하려 하지도 않는다. 시인 김상용도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노래했듯이 '낙담하지 말고 웃자'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살아 숨쉬는 가난하지만 결코 궁상스럽지 않는 자취생활 지침서이다.
허니와 클로버 1
우미노 치카 지음,
학산문화사(만화), 2003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