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여관 목 간판. 고암 이응노 작품이다이정근
이혼에 대한 상처를 씻으려고 일본에서 그림공부에 몰두하던 혜석은 일본 동경에서 열리는 제전(帝典)에 출품하기 위하여 금강산에 들어가 그림을 그려 제 12회 제전에서 입선하고 다시 귀국하여 선전(鮮典)에 출품하기 위하여 금강산과 해금강을 주유하며 그림 공부에 열중하지만 "육체의 신비를 모르는 것은 연애가 아냐"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나혜석이기에 그림공부에 몰입할 수 없었는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때, 이혼의 아픔을 극복하려고 그림 그리기에 전념하는 한편 신문 잡지에 여성 인권신장을 위한 칼럼을 기고하던 혜석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만다. 자신에게 성(性)을 가르쳐준 최린을 상대로 '유부녀의 정조를 유린했으니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지방법원에 소를 제기한다. 조건 없는 열정적인 사랑을 주장하던 혜석으로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였다.
경성 장안에 화제를 뿌리며 조롱거리의 주인공으로 전락한 혜석은 문제가 확대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최린측의 제의로 사건을 합의하고 종결하지만 혜석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린 딸과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병이 되어 신경쇠약과 손이 떨리는 수전증까지 찾아와 병든 몸을 이끌고 전국을 유람하다 수덕여관에 찾아온 것이다.
만공선사로부터 중이 되는 것마저 거절당한 혜석은 수덕여관에 머물면서 중이 되게 해달라고 1인 시위를 하는 한편, 붓 가는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찾아온 젊은이가 있었으니 그 사람이 화가 이응노다. 그림에 대한 열정이 불타고 있던 청년 이응노에게는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돌아온 나혜석은 둘도 없는 선배이자 스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