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정보문화 보급을 위한 노력

'남부교육센터'를 찾아서

등록 2005.07.29 00:24수정 2005.07.2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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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에서는 쉴새없이 떠들어댄다. 정보화 시대라고. 유비쿼터스 시대라고. 마치 전 사회의 네트워크화가 실현되기라도 한 듯, 모든 구성원들에게 동등한 정보 접근권이 부여되기라도 한 듯. 언론, 정부 할 것 없이 한 목소리로 떠들어댄다.

다른 쪽은 잠잠하다. '정보'라는 새로운 권력의 중심에서 철저히 소외된 이들은 사회의 주변인이다. TV, 신문에서 정보화 사회에 대해 아무리 떠들어댄들, 이들에게는 달나라 토끼 방아찧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사회의 조명이 비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공권력과 같은 물리적 통제수단이 절대권력의 상징이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지난 2002 대선 당시 네티즌들이 보여주었던 막강한 행동력을 기억하는가. 지금은 정보가 곧 권력이다. 따라서 이런 사회에서는 정보에 대한 접근력이 곧 권력에 이르는 수단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는 것, 그 의식을 타인과 공유함으로써 연대를 구축하는 것 모두, 정보에 대한 접근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에 지식격차(knowledge gap)가 존재했듯이, 오늘날에는 정보격차(digital divide)가 존재한다. 컴퓨터를 배울 수 있는 여건이 못 되면 자연히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진다. 아무리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고 한들, 수영도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낯설고 무섭기만 할 뿐이다.

밖에서 바라본 남부교육센터. 우림시장 바로 근처에 위치해 있다.
밖에서 바라본 남부교육센터. 우림시장 바로 근처에 위치해 있다.임기창
이들에게 '헤엄치는 법'을 가르쳐 정보의 바다로 뛰어들도록 돕는 이들이 있다. 문해교육기관이면서 지역사회의 주민교육활동까지 담당하고 있는 '남부교육센터'의 교사들도 그들 중 하나.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자리하고 있는 남부교육센터는 본래 한글과 중고등과정 교육을 담당했던 야학이었으나 시대 변화에 따라 중고등과정은 폐지하고 대신 지역주민교실을 개설하여 영어, 컴퓨터 등을 가르치고 있다.

센터의 컴퓨터 수업은 월~목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2시간. 7시 반이 가까워지자 어머니들께서 한 두 분씩 모여드신다. 겨우 학생 6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비좁은 교실에, 에어컨이 없으면 금세 등줄기에 땀방울이 흐를 만큼 무더운 여름밤이지만 수업 분위기는 시종일관 즐겁고 학생들의 눈빛은 빛이 난다. 배움의 즐거움 때문일까. 교실에서는 수업 중에도 연신 웃음보가 터진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까지 옆에 앉혀놓은 채 수업을 들으시던 최아무개 어머니(35)는 컴퓨터 교실로 인해 인생이 달라지셨단다. 이전에는 아이들과 컴퓨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정말 어려웠는데, 지금은 아이들의 개인 미니홈페이지까지 구경할 수 있게 되어 정말 즐겁다고. 컴퓨터를 통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더 열심히 배워서 재취업을 하겠다는 포부를 자랑스럽게 내보이신다.


사실 남부교육센터에서 컴퓨터 교육을 주민들에게 실시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2002년 8월 실시한 '난곡지역 평생교육 욕구조사' 결과 컴퓨터와 영어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욕구가 매우 크게 나타났고, 이를 토대로 금년부터 컴퓨터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시하게 된 것.

센터에서 상근직으로 근무하며 관리 및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김한수 교사는 "학생들이 (컴퓨터) 수업을 재미있어 하시며 첫 학기라서 그런지 요구사항도 많다"면서도 "단순한 지식 중심의 (교육) 프로그램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센터보다 훨씬 더 나은 교육시설을 갖춘 관공서나 복지관 등과 차별되는 교육과정을 지녀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김한수 교사는 컴퓨터 교실 역시 지식 전달 위주의 일방적인 수준을 넘어 '민중교육의 일환'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컴퓨터수업에 임하고 있는 교사와 학생들.
컴퓨터수업에 임하고 있는 교사와 학생들.임기창
기능적 교육의 한계를 넘어

그러나 교사들의 이 같은 바람이 학생들과의 공감대를 쉽게 이루지는 못하는 듯하다. 컴퓨터 교실 중급반을 담당하고 있는 한 대학생 자원교사는 "우리(교사들)는 어머님들의 삶 속에 들어가고 싶으나 어머님들은 센터를 단순히 '학원'처럼 생각하신다"며 기능적인 컴퓨터 교육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인정했다.

즉, 학생들의 욕구는 단순히 젊은 세대와의 괴리감을 줄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주부사원의 이직 시 요구되는 컴퓨터 활용능력을 습득하는 것일 뿐, 학생들의 삶을 좀 더 풍요하고 능동적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서 컴퓨터를 배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바라는 '민중교육의 일환'으로서의 컴퓨터 교육, 혹은 정보화 시대에 자신들의 주권을 능동적으로 추구하는 시민 양성이란 요원한 것일까. 남부교육센터의 교사들은 희망을 내비친다. 일단 학생들이 센터라는 공동체 내에서 서로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컴퓨터 교실의 학생 연령층은 아직 30-40대로 젊은 편에 속한다.

따라서 이들이 함께 모여 지역사회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고자 할 때, 컴퓨터 활용능력은 적지 않은 힘이 되리라는 것이 교사들의 생각이다. 적어도 고기 잡는 방법만큼은 알려줄 수 있다는 얘기다. 일리있는 말이다. 무슨 고기를 잡으라고까지 말해 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교육은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는 수단이다. 누구나 정보의 바다에 뛰어들어 고기를 낚을 수 있는 능력과 기회, 이것이 평등하게 제공될 때 소위 '전자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남부교육센터의 컴퓨터 교사들은 오늘도 고민의 땀방울을 흘린다. 그들의 바람과 노력이 결실을 맺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주)안철수연구소 사외보 '보안세상(http://sabo.ahnlab.com)'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주)안철수연구소 사외보 '보안세상(http://sabo.ahnlab.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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