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의미를 찾는 연금술

[서평]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등록 2005.07.14 23:13수정 2005.07.1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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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사진문학동네
오후 한시. 산티아고가 양들에게 풀을 뜯게 해주는 시간이다. 이 곳 안달루시아 평원에서 가장 영양가 있는 목초지. 양치기 산티아고만이 알고 있는 장소다. 양들에게 산티아고는 어머니이며, 형제이자 친구다. 60여 마리의 양들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마련해주고, 늑대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준다. 아픈 양들에게 친절한 의사가 되고, 외로울 땐 함께 뛰어놀 동무가 돼준다. 산티아고는 늘 양들 곁에서 그들 삶을 지켜봐준다.

시계가 없는 산티아고와 양들에게 어제와 오늘의 오후 한시가 늘 같은 건 아니다. 정확한 시간을 맞췄다 해도 하루가 24시간으로 똑 떨어지지 않기에, 오후 한시란 시각 자체가 어떤 특정한 의미를 갖진 않는다. 그저 해가 제일 높게 뜬 위치에 조금 못 미쳤을 때가 오후 한시다.


하지만 양들에게 오후 한시는 큰 의미가 있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하루 일상이지만, 오후 한시 만큼은 그들이 실컷 뛰어 놀 수 있고, 배불리 풀을 뜯어 먹을 수도 있다. 덧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찍어놓은 방점이 이들에겐 일상의 중요한 좌표가 된다.

양들에게 오후 한시를 알려주는 사람은 산티아고지만, 정작 자신은 삶의 좌표를 잃고 살았다. 그가 고향을 떠난 3년 동안 뭘 했던가. 계절을 좇아 목초지를 옮기고,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양털을 깎아 팔았다. 그는 이제 좋은 양치기가 됐지만, 그가 집을 떠난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그가 예쁜 마을 처녀와 결혼해 평범하게 살길 바랐지만, 그는 더 넒은 세상을 꿈꾸며 살고 싶었다.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소리에 이끌려 집을 나섰지만, 가난한 방랑자가 선택할 수 있던 건 양치는 일 뿐이었다.

이제 와서 보면, 지난 세월이 그에게 남긴 건 양치는 기술 말고는 없었다. 그가 바랐던 꿈도, 마음을 이끌었던 무언가도 잊은 지 오래다. 그랬던 그가 어느 날 연금술사를 만난다. 그리고 진정한 연금술을 배운다. 납을 금으로 바꾸는 기술이 아닌, 삶에 의미를 찾는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일을 말이다. 연금술사는 이를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것이라 했다.

자기에게 주어진 안락한 삶의 테두리 안에서 순응할 것이 아니라, 자아를 충만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일이 곧 연금술이란 얘기다. 이제 산티아고는 연금술로 무의미했던 자신의 삶에 활력과 숨을 불어넣었다. 그에게도 삶의 좌표가 될 만한 오후 한시가 생긴 셈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삶의 의미를 잃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연금술을 가르쳐준다. 그것은 허황된 망상을 꿈꾸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값지게 만들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해 준다. 끝없이 흘러가는 덧없는 시간과 일상 속 어느 한 점에 점을 찍고, 그 순간순간을 의미있게 가꾸어 나가게 해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삶의 좌표를 잃고 살아가는 사람이 한 둘이겠는가. 늘 바쁘지만, 왜 바빠야 하는지 모르는 현대인들은 양치기 산티아고보다 더 방황을 겪고 있다. 어릴 적 꾸었던 꿈들은 빛바랜 기억 속에 묻혔고, 자신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지난날의 열정은 식어버린지 오래다.

그래서다. 자아의 신화를 찾는 연금술이 필요한 이유가 말이다. 잡을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무한한 흐름 속에 자기만의 의미있는 방점을 찍어야할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 과거의 추억이 화석이 된 사람, 오늘의 삶이 의미가 없어진 사람은 이제 연금술을 배워보는 건 어떨까. 납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은 잠깐 접어두고 진짜 연금술을 배워볼 때다.

덧붙이는 글 | '오후 한시'는 기자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원작 <연금술사>엔 없는 이야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오후 한시'는 기자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원작 <연금술사>엔 없는 이야기입니다.

연금술사 (리커버 한정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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