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방죽, 군산 미군 기지 생활 용수로 쓰인다.배지영
마산 방죽은 변변한 장비도 없던 일제 강점기 때 쌀농사를 지을 물을 얻으려고 사람들 힘으로만 팠다. 김제나 부안 사람들까지 동원해서 3년 동안 팠다. 그 긴긴 시간 동안 어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더구나 한일병합이 되고 난 1920년부터 1923년에 걸쳐 맨 땅을 바다처럼 넓고 깊게 파들어갔는데.
마산 방죽이 없었을 적에 옥구읍 일대는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만 모를 심을 수 있는 '천수답'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마산 방죽이 생기고부터는 그 물을 끌어서 농사를 짓게 됐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 그 어느 곳보다 일본인 농장 지주들이 가장 많았던 군산은 항구를 끼고 있기도 하지만 들도 아주 넓다.
나는 대학 다닐 때에 마산 방죽을 처음 봤다. 그 때는 전국을 도는 데모대가 꼭 군산에 들렀다. 군산 사람들이 특별히 데모를 못해서 데모 법을 전수해주러 오거나, 특별히 데모 고수들이 많아서 한 수 배울 게 있어서가 아니었다. 군산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땅이라고 써 놓은 미군 기지가 있기 때문이다.
마산 방죽을 처음 본 날도 떼를 지은 데모대가 군산에 왔다. 전날, 선전물을 만드느라 밤을 샜던 나는 자취방에 씻으러 갔다가 잠들고 말았다. 뒤늦게 미군 기지에 갔는데 이미 학생 몇이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가는 걸 시도했고, 데모대는 어디론가 쓸려가 버린 뒤였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데 버스를 잘 못 타서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마산 방죽 옆을 바짝 붙어 지났다. 하도 넓은데다 고요하지도 않아서 바다인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