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민들을 위한 유랑작가의 한풀이

가난한 사람들 이야기, 공선옥의 <유랑가족>

등록 2005.05.27 09:01수정 2005.05.2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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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가난은 죄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또한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저 불편한 것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정말 그러한가. 현실에서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죄가 된다. 또한 부끄러운 것이 아니지만 부끄러운 것이 된다. 말 그대로 불편하기만 했으면 좋겠는데 이미 죄이며 부끄러움이 된다.


공선옥은 모두가 밝은 것을 찾는 시대에 일부러 어두운 곳을 찾아들어가는 작가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들 속에서 저자는 사랑할 여유도 없는 가난한 이들을 찾는다. 저자의 산문집 제목을 빌리자면 '사는 게 거짓말 같은' 사람들이 소설의 대상이다. <유랑가족>도 그렇다. 작품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으로 시작해 가난한 사람들의 삶으로 끝난다. 마치 세상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의 세상인 것처럼.

5개의 연작소설로 이루어진 <유랑가족>의 주인공을 딱히 누구라고 말할 수 없다. 많은 이들이 등장하기에 그렇기도 할 테지만 그 많은 이들이 서로 닮은꼴이기에 구분할 수 없어서 그렇기도 하다. 그럼에도 굳이 주인공을 말하라면 유랑하는 모든 이들이 <유랑가족>의 주인공이다.

유랑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남쪽 바다, 푸른 나라>에 등장하는 '정' 같은, 우국충정을 이야기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위해 '호박씨' 까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가난을 두고 '청빈'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유랑'한다는 말에 '자유'로워서 부럽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유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수많은 시간 동안 그러했듯이 '있는 자'들은 어차피 '없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숨이나 막히게 하지 않으면 다행일 테다.

저자의 <유랑가족>에 등장하는 그치들은 모두 죽지 못해 유랑한다. 또한 집이 없어서 유랑하고 돈이 없어서 유랑하며 갈 곳 없어서 유랑한다. 사는 게 거짓말 같아도 유랑해야 하고, 유랑하기 싫어도 유랑해야 한다. 그것이 없는 사람들의 운명이다.


그들은 등을 떠밀린 사람들이다. 무엇에 떠밀린 것인가. 있는 자들의 욕심이며, 있는 자들이 만든 세상에 떠밀린 사람들이다. 힘겹게 노점상이라도 해서 입에 풀칠이라도 할라치면, 아름다운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민들 신고에 출동한 단속원들 몽둥이에 떠밀려야 하는 그것처럼 이들은 떠밀렸다. 강제적으로, 폭력적으로.

그런데 무슨 조화인가. 노숙자와 노숙자가 좁은 자리를 두고 서로 다툼하듯이 유랑하는 이들은 유랑하는 이들을 향해 아옹다옹하며 소리를 지른다. 있는 자의 농간에 쫓겨난 그들은 당장의 일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자리를 차지할라치면 악다구니를 쳐야 하고, 약간이라도 먹을 것에 손을 댈라치면 죽을 힘을 다해 덤벼든다.


그것은 비극이다. 하루 먹고 살 걱정에 먼 일까지 생각할 수 없는 그들의 모습들은 비극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데 그것을 고스란히 껴안은 <유랑가족>도 어쩔 수 없이 비극이라는 단어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나마 그것들이 저자의 상상력에 의존한 소설 속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좋을 터인데 이미 알고 있듯이 그런 일은 없다. 공선옥이라는 이름의 작가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알 터이다. 저자의 글에서 어찌 허구성을 찾겠는가.

저자가 말하는 것은 글을 가장한 현실이고, 글을 가장한 없는 자들의 어제이며 오늘이고 내일이다. 유랑하는 가족들의 <유랑가족>도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니다. 이 땅 어디에선가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으며, 벌어질 것인 가난한 사람들의 삶 그것이다. 그렇기에 <유랑가족>이 껴안고 있는 비극적인 것들은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비극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여겨질 정도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말하는 세상이지만 정작 그 세상은 가난을 죄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가난 속으로 더 많은 이들을 몰아넣고 있다. 더군다나 가난이 죄라고 생각하게 되는 유랑가족들은 그 사실조차 모른 채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고 스스로를 욕할 뿐이다.

욕먹어야 할 것들은 따로 있음에도 그럴 여력조차 없다. "백죄 그러면 쓰간디요"라고 외쳐야 하고, "입 좀 닥쳐라"라고 소리쳐야 하지만 그럴 기력조차 없다. 그럴 시간도 없이 그들은 유랑을 해야 하는 운명이니까.

공선옥의 글은 편히 볼 수가 없다. 글을 통해서라도 현실에서는 꿈꿀 수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나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세상은 어차피 있는 자들의 몫이라는 것을. 차라리 저자의 글에서 한 번 더 울고 조금이라도 한풀이를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러면 유랑해야 하는 그 기구한 팔자를 짊어진 어깨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지지 않겠는가.

관련
기사
- [공선옥 인터뷰] "백죄 그라믄 쓰간디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실천문학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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