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1일 퇴임후 처음으로 광주를 방문한 김대중-이희호 전 대통령 부부가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서 시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오마이뉴스 김당
기자에게는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아까운' 생각이 드는 특종이 있는가 하면, 기회를 놓치면 차라리 '후련한' 느낌이 드는 특종도 있다. 필자에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겨 놓은 딸' 이야기가 바로 후자의 경우다.
필자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에 그 측근 몇몇에게 사석에서 그 딸 이야기를 아는지 넌지시 떠본 적이 있다. 대개는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고, 일부는 딸이 있다는 얘기는 아는 듯했다. 필자는 아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얘기했다.
"저도 좀 알지만 DJ 생전에 기사를 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나중에 DJ가 세상을 뜨면 '인간 김대중'의 평전을 쓸 때 딸 이야기를 쓰거나, 아니면 혹시 압니까?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죽었을 때 숨겨놓은 딸이 장례식장에 나타났듯이 DJ 장례식에 나타날지…. 또 그전에라도 본인이 친자확인 소송을 하거나 직접 입을 열면 써야겠지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DJ의 '혼외자'
그런데 그 딸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모양이다. 필자가 노무현 대통령의 독일-터키 순방(4월 10-18일) 수행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니 연합뉴스와 인터넷 매체 등에 '"나는 DJ의 딸입니다 - 진승현 게이트와 국정원 특수사업의 실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SBS <뉴스추적>팀에서 4월 19일 밤 8시55분부터 1시간 동안 같은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영한다는 예고기사를 가지고 쓴 기사들이었다.
뉴스추적팀의 예고기사에 따르면, "한달 남짓 취재 끝에 마침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김00씨를 찾아낼 수 있었고 대학원까지 마친 이 여인은 취재를 극구 거부하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터놓을 수 없었던 회한의 35년 세월에 대해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필자가 DJ의 딸, 김○영씨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2년 전이었다. 특히 이 딸은 필자가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오마이뉴스>에 처음 기고한 글인 '국정원 게이트는 처음부터 없었다?' 제하의 기사(2001년 11월 29일)와 직접 연관된 인물이었다.
필자는 이 기사에서 이른바 '진승현 게이트'의 핵심 연루자로 지목된 당시 김은성 국정원 차장과 정성홍 경제과장을 인터뷰해 이 사건의 본질이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개입된 비리(게이트)가 아니라는 점과 세상에 공개하지 못할 정보기관의 '특수사업'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국정원 '특수사업'은 대통령(DJ)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것
문제는 '특수사업'의 내용이었는데 필자는 그때는 막연히 추측했을 뿐 그 구체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DJ 퇴임후인 2003년에야 그 '특수사업'이 국가원수(DJ)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익준 전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2000년 작고) 때부터 시작되어 후임자인 김은성 국정원 차장이 인수하게 된 국정원 '특수사업'의 이른바 '여건조성' 대상인 김○영씨는 바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숨겨진 딸이라는 얘기였다.
김○영씨는 70년 당시 7대 국회의원 김대중과 여비서였던 김○애씨(당시 24세) 사이에서 낳은 딸로 알려져 있다. 김○영씨가 70년 7월 6일생이니 당시 김대중 신민당 의원이 김영삼·이철승 후보를 간발의 차이로 누르고 신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되기 두 달 전의 일이었다.
필자는 그의 소생이 하룻밤 혼외정사의 열정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숨길 수밖에 없는 사랑의 결과인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처음부터 김○영씨를 탐문해 확인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평온한 삶 누리는 전직 대통령의 사생활을 침해할 권리가 내게는 없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현직 대통령이라면 혹시 또 모르지만 이미 대통령직을 퇴임해 공직자의 신분이 아닌 데다가 자연인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는 전직 대통령의 사생활을 침해할 권리가 내게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DJ가 작고한 뒤에 '인간 김대중'에 대한 평전을 쓸 기회가 있으면 당사자를 만나 얘기를 들어볼 요량으로 취재는 해두었다. 그리고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70년 당시에 그런 사실이 알려졌더라면 71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한국 현대 정치사의 거목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