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포츠담 광장역 입구. 그 너머에 일본 기업의 동독 투자를 상징하는 소니센터가 자리잡고 있다.오마이뉴스 김당
60여년 전에 유럽과 아시아의 맹주임을 자처하며 파시즘과 군국주의의 동맹을 끈으로 주축국(主軸國)을 형성했던 독일과 일본은, 포츠담 광장의 소니센터가 상징하듯 지금도 여전히 근면한 국민성을 바탕으로 각각 유럽과 아시아의 경제대국으로서 끈끈한 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 독일의 언론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독일 국빈 방문을 계기로 일본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논평을 쏟아내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니에 자이퉁(FAZ)>, <디 벨트(Die Welt)>,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FR)> 등 독일 3대 일간지는 동아시아 한·중·일 3국의 '외교분쟁'을 주제로 일본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논평을 4월 11일(월), 12일(화) 이틀째 연속해서 싣고있다.
독일 언론들이 자국의 최대 투자국인 일본을 겨냥해 거침없는 쓴소리를 쏟아내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독일 국빈 방문에 있다. 그러나 본질적인 배경은 자국이 뼈저리게 체득한 경험에 의해 '자기도취와 자기미화에 기여하는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논평은 쾰러 독일연방 대통령의 지난주 일본 방문 및 일본에서의 '독일의 해' 개막으로 독·일 관계가 정점인 시점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것으로, 일본의 역사왜곡이 독일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독일언론의 진단이 그 배경인 것으로 분석된다. 비유컨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정 맞는' 변을 당해선 안된다는 '일본 경계령'의 발동인 셈이다.
노 대통령의 방독을 앞두고 노 대통령을 인터뷰한 < FAZ >(프랑크푸르트 소재)와 12일 노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앞둔 <디 벨트>(베를린 소재)는 각각 1면 사설과 외신면 논평을 통해 일본의 왜곡된 민족주의를 비판했다.
<디 벨트> "돼지 같은 놈들, 꺼져라" 중국 반일시위 보도
우선 FAZ와 함께 독일의 양대 '자유주의적 보수지'로 알려진 디 벨트지는 11일 외신면의 반면을 할애해 '일본 민족주의자들, 호전적인 일제의 위대함 추모'라는 제목으로 논평기사를 내는 한편으로 '돼지 같은 놈들, 꺼져라'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단 중국의 반일시위를 큼지막한 사진과 함께 실었다.
노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통해 민족주의자들의 감정을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 보수적인 일본인들의 호감을 샀다"고 다소 점잖게 비판한 이 신문 5면의 논평과 달리, "돼지 같은 놈들, 꺼져라"라는 중국 반일 시위대의 구호를 그대로 인용한 6면의 기사는 자극적이다.
이 신문은 "북경에서 일어난 반일시위를 중국공안당국이 묵인한 이후 반일시위가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면서 "이러한 시위로 중·일관계가 악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이 신문은 "지난 2차 대전 일본 군국주의에 의해 강탈당한 한국과 중국 같은 나라들에서의 전쟁범죄 사실을 왜곡한 최근 새로 개정된 일본 교과서가 중국에서 이와 같은 시위를 유발한 요인이었다"고 진단했다.
이 신문은 특히 "중국 공안당국은 '돼지 같은 일본놈들, 꺼져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일본 대사관으로 향하는 약 3000명의 시위대를 저지하지 않았다"면서 "이 시위대가 상품 불매를 주장하는 일본 기업 중에는 100만명 이상의 중국인이 고용되어 있는 중·일 합작기업도 포함되었다"고 보도했다.
독일의 최대 유력지로 평가받는 FAZ는 '일본의 어두운 그늘'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일본이 또 과거의 유령을 깨웠다"면서 "일본은 이웃국가에게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하지 않고 있다"고 동북아 외교분쟁의 배경을 분석했다.
이 신문은 이어 "일본은 문 앞에 있는 북한의 핵 위협에 처해 있으므로 준비무장을 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면서 "이제 한국과 중국이 동시다발적으로 일본의 과거를 문제삼고 있다며 모욕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신문은 특히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일본은 고유의 정체성과 문화, 고유의 가치를 점차 상실한다"고 전제하고 "예컨대 고래잡이는 고래기름처럼 일상생활에 더이상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고래잡이에 대해 매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면서 "이러한 것들은 자기도취와 자기미화에 기여하는 민족주의에 다름 아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과거극복'의 문제를 통찰하지 않을 것이며, 다만 유엔 안보리 상임위 이사국 진출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라며 "일본이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한 이웃국가와의 과거청산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고 조언을 했다.
FR "민족주의라는 야수를 탄 일본은 독일의 유엔 안보리 진출에도 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