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11월 10일 친구로부터 온 엽서. 이제는 유서가 돼버렸다.박도
내가 자네를 찾는다는 기사가 <오마이뉴스>에 나간 지 꼭 일주일 만에 재미동포 이도영 박사로부터 아래와 같은 메일을 받았다네.
선생님…. 제가 며칠 동안 장거리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사이에 박 선생님이 친구를 찾는다는 오마이뉴스 사연이 뉴욕 한국일보에 기사로 나갔나 봅니다. 서너 곳에서 전화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는데, 확인한 결과 양 선생님은 10여년 전에 고인이 되었다는 슬픈 소식입니다. 중동고 동창인 이동호씨 메시지도 있었습니다. 1-718-939-XXXX (댁) 또 한 분 여자 분인데요, 1-845-365-XXXX
좋은 소식이 아니라서 선생님 마음 아프시겠습니다.
도영 드림
순간 뒤통수를 뭐로 맞은 기분으로 한참을 멍하니 지내다가 이 박사가 전해준 두 곳 전화번호를 눌렀네. 그랬더니 이동호씨와는 통화가 안 되었고, 자네 친구 정규철씨 따님이라는 분과는 통화를 할 수 있었네. 그분이 전하는 말도 이 박사의 메일 내용과 똑 같았네.
뜻밖의 비보
그래, 나는 자네의 친구가 아니야. 이 문명 세상에 친구가 세상을 떠난 지 10여년이나 되었는데도 생사도 모르면서 무슨 친구라는 말을 할 수 있겠나. 모든 게 내 잘못일세.
양·철·웅. 이제는 이승에서 아무리 불러봐야, "박도니, 나 철웅이야. 얘, 너 어쩜 그렇게도 소식이 없었니?"라는 다정한 자네의 그 계집애 같은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네.
비록 저승에 있는 자네지만 비보를 듣고, 자네를 그리는 글이라도 한 편 쓰려고 하니, 슬픈 감정이 북받쳐 도저히 자판을 두드릴 수 없었네. 그래서 하루를 보낸 후 이 글을 쓰네. 하지만 여태 내 마음은 슬픔으로 북받쳐 있고 좀체 가라앉지가 않네.
요즘 인터넷에 띄운 글은 시공을 초월하기에 이 글이 아마도 저승에 있는 자네에게도 전해지리라 믿네. "귀신 같이 안다"고 하였으니, 저승에 있는 자네는 내 마음을 환히 꿰뚫고 이 글을 줄줄 읽을테지.
나 지난해 학교를 그만둔 후 강원도 산골에 내려와 지내고 있네. 세 집밖에 살지 않는 두메에 살다보니 적적할 때가 많네. 벌써 추억에 젖을 나이인지 일주일 전 그 날(2005. 1. 30)은 잠도 오지 않아서 이런저런 지난날을 되새기던 가운데에 자네 생각이 불쑥 났어.
마침 그동안 편지를 모아둔 상자에서 꼭 30년 전, 자네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보내준 엽서를 찾았고, 그 엽서를 보니 더욱 자네가 그리웠고 그동안 무심했던 내가 미웠네. 하지만 자네의 거처를 몰라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엽서를 스캔하고 자네를 찾는 사연을 담아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신파조 제목을 달아 요즘 내가 연재 중인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75'에 올렸네.
네티즌이 알려준 주소
이튿날 이 기사가 화면에 뜬 지 몇시간도 안돼 다음의 댓글이 올랐네.
옛날 동창분의 주소는.. 조회수:396 , 추천:1, 반대:0
동준아빠(malaikaang), 2005/01/31 오전 11:16:27
42-60,Main St. 5G flushing, N.Y , 11355, U S A
TEL : 001-1-718-358-**** (자택)
001-1-718-219-**** (직장)입니다. 뉴욕에 계시나 봐요.
출처는 연세대학교 동문회 주소록 2004 발간을 참조하였습니다.
혹시 안맞을 수도 있지만 친구 분의 소식을 꼭 듣게 되길 기원합니다.
나는 이 글을 보면서 참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몹시 부끄러웠네. 이렇게 쉽게 알 수 있는 자네 주소를 왜 그동안 찾지 않았던가. 연대 동문회관은 내가 28년간 근무했던 이대부고 바로 길 건너편에 있지 않은가. 거기에 은행 일로, 차를 마시러, 결혼식 하객으로, 주례자로 숱하게 드나들면서 한번도 동창회 사무실에다 자네의 주소를 물어보지 않았으니 얼마나 무심한 사람인가.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동준아빠'에게 무척 미안했네. 그는 자기 컴퓨터를 켜면 곧장 내 글이 화면에 뜨도록 장치를 해 둔 나의 열렬한 팬이라네.
그 댓글을 보고 나는 곧장 전호번호를 눌렸네. 그런데 자네 자택은 신호가 간 뒤 한참 후에야 영어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고(아마도 부재 중 메시지를 남기라는 말인 듯), 직장 전화는 시간이 맞지 않는듯 받지를 않았네.
마침 지난해 백범 선생 암살배후를 찾고자 미국 방문 중 알게 된 이도영 박사가 자네 주소와 가까운 곳에 살기에 그분에게 다음과 같이 메일을 보냈네.
뉴욕 한국일보에 사연이 실리다
안녕하세요, 이 박사님! 날씨가 몹시 춥습니다. 네티즌의 도움으로 고교 때 짝이었던 양철웅이라는 친구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30년 만에 알았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여러번 전화를 걸었으나 잘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수고스럽지만 이 박사님께서 전화하셔서 그 친구가 과연 그곳에 살고 있는지 알아봐주십시오.
메일을 보낸 지 몇 시간 뒤 이도영 박사로부터 아래의 메일이 왔네.
친구분 통화가 안됩니다. 두 개 전화번호 모두 잘못된 번호라고 합니다. 주소로 한 번 편지를 띄워보겠습니다. 사람이 없으면 돌아오든지, 아니면 이사 간 곳으로 따라가니까요.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도영 올림
<친구 찾기 부탁>
뉴욕 한국일보에 잘 아는 분(Dr. Kim)이 있어서 부탁했더니만, 찾기에 힘써 주신답니다. 기사로 내보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박 선생님께서 <오마이뉴스>에 올린 기사도 복사해서 드렸습니다. 그리고 연세대 동문회 연락책도 찾고 있습니다. 또 이곳 한국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에게도 연락하려고 합니다. 다방면으로 찾아봐야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요. 도영 올림
동준아빠(malaikaang) [2005-02-03 14:18]
꼭 찾으시리라 믿습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목 자른 군화'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