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여성농업인센터 부설 '쌀보리 공부방'박도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시골에서 다녔고,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애초 어린 시절에 내 꿈은 시골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런데 자라면서 그 꿈은 바래져서 초등학교보다는 중·고등학교, 시골 교사보다 서울의 교사가 되고자 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교사 초임은 시골 중학교에서 시작했으나 교사 생활 대부분을 서울 도심에서 보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쓸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시골과 도시의 교육을 두루 잘 아는 이가 아닐까 하는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이 글을 쓴다. 또 우물 안에서는 그 우물이 맑은지 흐린지도 잘 모르다가 우물 밖에 나온 다음에야 그 물의 청탁을 안다는, 일선 교육에서 떠났을 때 오히려 우리 교육의 문제가 더 잘 보인다는 역설로 이 글을 쓰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농업 및 어업 기본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3년 말 농촌 인구는 353만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7.4%요, 어촌 인구는 21만여명으로 전체인구의 0.4%라고 한다.
지난 1993년 말 대비 10년 동안 농촌 인구는 34.7%가, 어촌 인구는 29.8%가 감소했다. 이와는 달리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오히려 20.1%가 증가하여 같은 기간 15.0%에서 27.8%로 농가 인구 4명 가운데 1명 이상이 노인이다(한겨레 2004. 2. 27).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1950년대는 농촌 인구가 전체 인구의 70%라고 했는데 그새 농촌의 인구가 거의 1/10로 줄어드는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면 곳곳에 폐가가 된 집이나 폐교가 된 초등학교 건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들은 대체로 먹고 살기 위해서나 자녀 교육을 더 잘 시키고자 조상 대대로 살았던 땅을 등졌다.
이는 마치 금광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 들었던 1840년대 미국 서부개척사의 골드러시(gold rush)를 연상케 할 정도로, 최근 30~40년 사이 사람들이 농어촌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들었다.
이런 현실에 여태 농촌을 지키거나 새로이 도시에서 시골로 찾아든 젊은이들은 ‘바보’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들이 농촌을 지키는 파수꾼들로 거룩해 보인다. 여기서 ‘바보’란 “바라볼수록 보고 싶다”의 준말로 해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