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씨가 가지고 온 잣송이를 담은 부대박도
보름 전 쯤 앞집 노씨가 개 사료 부대를 들고 내 집에 왔다. 거기에는 잣송이가 가득 들어있었다. 송안리에 사는 박씨가 나에게 전해주라면서 맡기고 간 걸 가지고 왔다고 했다.
지난 9월 25일, '나는 왜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이 많을까'라는 기사를 쓰면서 박씨 내외 얘기와 함께 그들 부부 사진을 올린 것을, 그분 내외가 무척 고맙게 여긴 나머지 감사한 마음으로 잣송이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좋게 말하면 인정으로 보낸 것이요, 굳이 나쁘게 풀이하면 기사에 대한 사후 사례를 받은 셈이었다(이 고백으로 기자 신분 박탈 사유가 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것을 굳이 돌려주면 오히려 마음 상하게 할 것 같아서 지난 번 찐빵 축제날 부인을 만나서 잘 받았다고 인사를 하고는 대신 저녁을 대접한 적이 있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바쁘기도 하고, 잣송이를 일일이 까는 게 쉬운 일도 아니라 뜰에 두었다. 근데 다람쥐란 놈이 용케 알고서 며칠째 드나들면서 부대안의 잣으로 신나게 배를 채우고 가느라고 내 눈에 자주 띈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다람쥐가 손대지 않은, 낱알이 잔뜩 달린 잣송이를 골라 뜰에 두고 내 글방에 들어와서 지켜보았다. 그러자 곧 다람쥐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뜰에 나와서 익숙한 솜씨로 잣껍데기를 벗기면서 오찬을 즐기는 것이었다.
아내도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의 쟤들의 식량을 모두 뺏은 건데 나에게 쩨쩨하게 하나만 준다면서 좀 많이 주라고 나무랐다. 나는 다시 아홉 송이를 뜰에 두고 카메라 앵글을 잡은 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