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과 자운을 대하다

붉게 물든 도봉산을 찾아

등록 2004.10.11 16:03수정 2004.10.1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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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말한다. "이제 그만 내려가거라." 그러나 자운봉에 넋이 나간 사람들은 하산할 생각을 갖지 못한다. 그렇다면 자운봉은 고려 무인정권 시대 최고 권력자 최충헌이 아끼던 기녀 자운선에서 이름을 따 온 것일까? 이름이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이 둘의 관계를 연관지어 본다. 10월의 가을 햇살이 자운봉을 감아 서쪽으로 달음질친다.


"내 여기에 올라 신선처럼 잠시 세상의 시름을 잊고 자운과 대화를 나누노니, 이 세상 무엇이 부러우리오"라는 자작시가 문뜩 머리 속에 떠오른다.

도봉산. 2004년 가을의 도봉산은 단장을 마치고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다. 단풍이 지는 정상은 단풍 대신 형형색색 등산복으로 갈아입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멀리 인천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맑은 날씨를 놓칠세라 사람들은 도봉산의 마지막 단풍을 신선대와 자운봉에서 즐기고 있었다.

신선대(우)와 자운봉(좌). 마치 한폭의 그림같다.
신선대(우)와 자운봉(좌). 마치 한폭의 그림같다.하세용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고구마 등 먹거리를 준비해 1호선 회룡역으로 나갔다. 나를 기다리는 친구의 얼굴에는 단풍색 웃음이 만발한다. 회룡 매표소를 지나 회룡사로 올라가는 구간의 계곡은 가뭄에도 불구하고 물이 넘친다. 여름에는 저 시원한 물줄기가 사람들의 삶의 시름을 씻어 주리라.

회룡사 앞에 펼쳐진 계곡. 여름에는 무척이나 시원하겠지요?
회룡사 앞에 펼쳐진 계곡. 여름에는 무척이나 시원하겠지요?하세용
드디어 사패능선에 도달하다. 관악산의 깔딱 고개에 버금가는 가파름에 숨이 가슴을 벌리고 밖으로 튀어나올 듯하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우리는 본격적인 포대능선으로 접어든다. 잠시 후 649봉에서 바라보는 도봉산 전경은 눈부신 가을날의 오후 햇살에 불타고 있었다.

도봉산 정상부에 우뚝 솟은 자운봉-만장봉-선인봉-주봉-신선대 등의 암봉군이 아주 드물게 펼쳐지는 자운(紫雲)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저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신선이리라.


눈 앞에 펼쳐진 도봉산 주봉들. 카메라에 전체 모습을 담을 수 없어 아쉬움만 남아
눈 앞에 펼쳐진 도봉산 주봉들. 카메라에 전체 모습을 담을 수 없어 아쉬움만 남아하세용
사패능선을 지나 포대능선을 따라 계속되는 숲길. 아쉽게도 단풍이 지고 있었다.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고 있는 단풍나무만이 등산객의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 포대능선을 뒤로 하고 보문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에 우리를 반기는 오봉. 신선대와 자운봉의 자태를 시기하는 자연의 삐침일까. 거대한 바위 위에 올려진 또다른 바위들. 사람의 눈에는 분명 무게중심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쏠릴 것만 같은데도 저렇게 억겁년의 세월을 견뎌내고 있었으리라.

우이암에서 바라본 오봉. 신이 빚어낸 아름다움의 극치랄까. 기암괴석이 우릴 반긴다.
우이암에서 바라본 오봉. 신이 빚어낸 아름다움의 극치랄까. 기암괴석이 우릴 반긴다.하세용
산행을 마친 후 전철역 주변에서 동동주를 술잔에 따르고, 그 안에다 또 도봉산을 그려낸다. 술잔에 비친 신선대-자운봉-만장봉-오봉-우이암 등의 암봉들이 동동주를 마다않고 나에게 대작을 청한다. 이번엔 그들이 신선이고, 내가 자운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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