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은 낡은 유물,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지난 5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2580>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지 의견을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5일 MBC <시사매거진 2580>에 출연해 국가보안법 폐지 의견을 제시한 것은 '일대 사건'이다.
알다시피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4개월도 안 된 1948년 12월 1일 제정되었다. 그해 11월에 발생한 이른바 '여순(麗順) 사건'을 계기로 남한의 좌익세력의 '준동'(蠢動)을 막고 이들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서둘러 제헌의회에서 제정한 것이다.
이런 목적성은 이 법이 처음 적용된 1949년 한 해 동안 이 법으로 구속된 사람이 무려 11만8000명이었고, 132개 정당과 사회단체가 해산된 데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대한민국 형법이 제정되기도 전에 이 법을 임시특별법으로 서둘러 제정한 데는 이런 목적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국가를 형성해가는 혼란기에 북한과 연계된 좌익세력들이 정부를 '참칭'(僭稱)하는 것을 막기 위한 미봉책이었다. 그러나 이 미봉(彌縫)의 한시법은 91년 노태우 정부 말기의 김영삼씨가 여당 대표 시절에 '날치기'로 7차 개정이 이뤄지기까지 누더기가 되도록 변신해가며 모질고 질긴 목숨을 부지해왔다.
액면 : YS-전면폐지론자, DJ-대체입법론자
사실 '액면'으로 말하자면 국가보안법은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으로 폐지되었어야 했다. 이른바 직선제를 처음 쟁취한 87년 대선 및 88년 총선 이후 전개된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은 정치인의 국가관과 철학을 재는 바로미터였다. 그때 김영삼씨(YS)는 '전면폐지론자'였고 김대중씨(DJ)는 '대체입법론자'였다.
그러나 전면폐지를 예상했던 폐지론자들의 기대와 달리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후 국보법 존치론자로 바뀌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대체입법을 통한 폐지론자이면서도, '여소야대'라는 한계를 안고있었던 탓도 있지만, 야당의 색깔론 공세를 의식해서인지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최근 열린우리당의 이른바 386 운동권 출신 의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국가보안법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어떻게 슬기롭게 해쳐가야 하냐는 질문을 받고 "평화민주당 총재이던 13대 국회 시절 야 3당 합치면 과반수였는데 그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대체입법하자고 법안을 낸 적이 있었다"고 전제하고 "그 이후에 (3당 합당으로 여대야소가 되어) 원내 의석상 논의가 안됐다"면서 "그렇게 참고해달라"고 폐지에 대한 심정적 지지의사를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서 이임한 후 국내정치 문제에 개입 안하겠다고 했고 그 말을 지켜왔다"면서 "국보법 문제가 여야간에 첨예하게 대립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국내정치 불개입 원칙에 따라 안된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DJ는 역대 대통령 중에서 '유일한' 국보법 피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