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박광정한상언
- 작품이 2014년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작품 속 모습은 마치 현재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등장인물 17명이 하나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던져지고 관객들이 스스로 자기가 제일 마음에 드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뽑아 조합해서 자기 나름의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생각하기를 원했다. 때문에 연도는 크게 의미가 없다.
10년 후인 2014년으로 설정한 것은 현재 상황과 비교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했다. 특별히 2014년에 이렇게 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한 것은 아니다. 생텍쥐베리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프로그램을 안본 사람들은 현재의 이야기로 생각할 것이다.
94년 <도쿄노트> 초연 시, 2004년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2004년으로 할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현재가 2003년인데 2004년이라고 설정하고 가기에는 너무 세월이 붙어있기 때문에 멀리 떨어뜨려 가까운 미래로 설정했다."
- 이 작품은 조명 변화가 거의 없고, 음악사용도 절제되어 있다. 연극을 보기보다 마치 일상의 한 토막을 보는 것 같다. 원작도 마찬가지인가?
"원작자와 메일을 통해서 또 본인이 프로그램에 써놓은 글을 읽으면서 이 작품을 왜 썼는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일본에서 연극이 하도 요란하고 시끌벅적하니까 자기는 그것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연극이라는 것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 배우의 입을 통해서 전달되는 언어의 힘인데 그 언어의 힘이 점점 약화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극히 일상적인 연극을 통해 '연극이 무대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에' 잊었던 연극 속 일상성에 대한 원작자의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흔히들 이 같은 연극형식을 '극사실주의'라고 한다. 아마도 요란한 연극에 익숙해 있는 관객들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그 낯섬 속에서 나의 일상에 대해 다시 한번 돌이켜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히라따 오리자의 작품 대부분이 그렇다. 공연전에 무대에 배우가 이미 나와 있고 조명변화가 없고 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원작 대본은 배우를 매우 갑갑하게 만들게 써있다. 모든 지문이 다 들어 있다.
'10초 후에 들어간다', '7초 후에 나온다', '30초 동안 말이 없다', '한번 쉬었다가 이야기한다' ,'겹쳐서 이야기한다', '동시에 이야기한다', '걸어 들어가면서 이야기한다', '말하면서 들어온다'.
이런 것이 지문에 다 써있다. 지문에 묶여서 배우가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번안대본을 만들 때 지문을 빼고 대사만 이용했다. 아무래도 디테일한 부분은 원작과 다르다."
- 이 연극은 조명과 음악사용이 절제되어 있어 연출자가 배우에게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배우들의 연기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할 수만 있다면 이 연극을 우리 극단의 고정 레퍼토리로 정기적으로 올리고 싶다. 이번에 공연하는 팀이 극단에 계속 남아있다면 나이가 먹어가면서 이 작품의 완성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굳이 이번에 공연했던 배우들이 아니라도 연령대가 조금 높은 배우들이 한다면 더욱 좋아 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연기에 만족한다. 내가 오디션해서 뽑은 배우들이다. 배우들이 모든 것을 다 잘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매번 공연을 통해서 변화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완성도가 높아질 것이다. 배우들도 공연이 계속되면서 자기 대사들에 대해서 분석하고 밀도를 높여갈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조언은 계속 할 것이다. 아마 지금 이 팀이 한 5년 동안 그대로 한다면 훨씬 좋아 질 것이다.
사실 이 연기 스타일이 굉장히 어렵다. 일상적인 연기가 쉽게 보일 것이다. '그거 뭐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는 것 같은 연기인데 그게 뭐가 어려워' 이렇게 이야기하겠지만 사실은 일상적인 연기를 무대 위에서 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차라리 소리를 지르거나 춤을 추거나 뭔가 기존에 연극하듯이 관객석을 향해서 대사를 하는 것이 이 연기 스타일 보다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