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언
그렇다면 어떤 작품을 해야 될 것인가. 이현화 선생이 쓴 <카덴자>, <산씻김>, <0.917>, <불가 불가>, <누구세요 쉿, 쉿, 쉿>, 이것이 우리 극단이 했던 잔혹극이다. 이현화 선생하면 나고, 둘이 잔혹극이니 엽기극이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화 라는 작가는 상식적인 작가가 아니어서 그렇지 연극성은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분이 다뤘던 것이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그 시대 심의가 너무 강해서 중앙정보부 문화 담당관들과 부딪혀야 되니, 은유, 상징으로 갔다. 그래서 잔혹극이 나왔다.
원래는 고문극인데 고문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해서 잔혹극이라는 용어가 나왔다. (잔혹극은 내가 처음 만든 것이 아니라) 사실 불란서의 앙토냉 아르또 라고 잔혹극을 창시한 분이 계신다. 그 시대가 우리를 잔혹극을 만들게 만들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들어와서 <산씻김>을 계속했던 것은 외국에 가야 될 일이 있어서였다. 외국인들이 그 작품을 선호한다. 취리히 연극제에 공식으로 초대받아서 스테이지상 3,000달러씩 받고 호텔에서 숙식해주고, 스위스 4개 도시도 가보고 했다. 유럽은 오라는 곳이 많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것 보다 일단 한국에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2004년에는 이현화 선생의 <카덴자>를 가지고 멕시코 ITL 페스티발에 간다.
그런데 군부독제가 끝나니까 그 선생의 작품이 오늘의 관객하고 잘 안 맞는 것 같다. 오늘의 20대 관객은 광주사태도 모르는 것 같다.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으니까. 그래서 이번엔 이현화 선생의 작품은 <산씻김> 하나만 넣고 강약을 조절했다. 물론 2003년 문화계에 쇼크적인 프로그램도 있다. 내가 93년에 이윤택씨의 <불의 가면>을 가지고 전라(全裸)연극을 했다. 그와 같은 쇼크적인 작품도 있다.
<이상의 날개>를 선택한 것은 번역극이 범람하던 시절인 1976년에, 나, 지금은 방송 드라마 작가로 명성을 떨치는 정하연씨, 돌아가신 오페라 연출가 문호근, 초대 연우무대 회장이었고 지금은 여의도에서 치과의사로 있는 극작가 오종우, 이렇게 4명이
“우리는 우리의 얘기를 우리의 목소리를 하자. 번역극 계속 해야 남의 것 껍데기만 빌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76년 창작극을 시작해서 26년 동안 창작극만 해온 것이다. 그 첫 번째 막을 올렸던 것이 <이상의 날개>였다. 그 당시 정치 사회적 이야기를 하자고 출발했는데 처음부터 그러면 블랙리스트 상에 오를 것 같으니까 일단은 이것으로 갔다. 그런데 두 번째 작품이 오종우 작 문호근 연출의 <지하도>였다.
개막 보름 전에 심의하는 곳에서 수정 삭제가 아니라 공연불가로 판정이 나고 얘네 집단 애들 신원 조회 하라 이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정하연씨는 방송국으로 가고, 문호근씨 오페라한다고 독일 유학가고, 오종우씨는 치과의사로 갔다가 몇 년 있다가 돌아와서 연우무대 맡는 것이다. 그렇게 비극적 시대를 살았던 적도 있다.
- 올해 공연되는 8편은 다양하다. 작품 선택은 어떻게 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