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PD연합회 주최로 지난 6월 3일 저녁 서울 신촌 소통홀에서 열린 '나는PD다'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정혜윤 CBS PD.
이정민
크레타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말에서 작가의 책임을 생각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라 막중한 의무가 담긴 어떤 일이었다. 그 의무란 어떤 것일까? 글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미래를 향한 물꼬를 터주는 것이었다.
그는 한 시간이라도 먼저 미래의 인간이 태어나게 하고 싶어 했다. 그는 글에서 아름다움이 아니라 구원을 다루고 싶어 했다. 그는 어떤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망의 가장자리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두려움을 직시하고 꿋꿋하게 끝까지 싸우는 인간에게 경의를 표했고 글을 통해 그들을 살려내고 싶어 했고 그러면서 자신도 용기를 얻고 싶어 했다.
그는 인간에게 자부심이 필요한 이유는 평화나 위안, 기만에 가득 찬 희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약하고 하찮은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떤 인생을 가치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했을까?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 서문에서 그가 인정하는 사람의 가치란 힘과 끈질긴 인내심에 의존해서 가장 높은 정상에 다다르기 위해 한걸음 한 걸음 나아가려는 노력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에게 인간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인간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오르는 존재다. 하지만 수많은 이들은 중간에 멈추고 쓰러지고 오르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자신의 영혼은 물론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할 수 없게 된다. 그는 한 사람의 생 전체는 누군가의 손에 들린 활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세 가지의 영혼, 세 가지의 기도'를 올린다.
첫째, 나는 당신의 손에 쥔 활이올시다. 주님이여,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둘째,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주님이여.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셋째, 나를 힘껏 당겨 주소서. 주님이여,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겠나이까? 이 기도처럼 그는 삶을 통해 끝없는 '오름'의 여정이란 여행에 나섰다. 그렇게 만난 사람 중에 조르바란 노인이 있었다. 조르바는 세 번째 기도에 해당하는 사람이고 요새 말로 바꾸면 '짱'인 할아버지, 어지간히 밝히는 할아버지였다. 조르바는 대지와 접촉한 영혼이었다. 그는 고운 말을 쓰지 않고 책에서 들은 말로 돌려 말하지 않고 오로지 그가 겪은 것, 그가 본 것으로 삶을 보되 삶을 깊이 사랑했다.
어떤 무엇도 그의 영혼을 파괴하지 못했다 그에게 날아오르는 새, 굴러가는 돌멩이 하나도 새롭지 않은 게 없었다. 그 앞에서 지구는 매일 아침 생명력을 얻고 꿈틀댄다. 그는 말한다. 예수는 크리스마스에 태어났잖아요. 나도 크리스마스 때마다 아이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조르바는 여자, 먹을 것, 마시는 것, 춤추고 노래하는 것에서 결코 관심을 끊은 적이 없었기에 결국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말하고 마는 것이다. '주위 세계에 함몰된 그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 모든 것(여자, 빵, 물, 고기, 잠)이 유쾌하게 육화하여 조르바가 된 데 탄복했다.' 조르바는 '당신이 먹는 걸로 무얼 하는지 가르쳐줘 봐요. 그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줄테니'라고 말한다.
우리도 먹는 것, 읽는 것, 자는 것, 길을 잃는 것, 고민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합해져 어떤 신비로운 화학작용에 의해 우리가 된다. 우리는 먹는 걸로 뭘 하는 것일까? 우리의 육체는 어떻게 영혼으로 변화하는가?
사랑할 때는 죽도록 사랑하고, 일할 때는 죽도록 일하고, 말할 때는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외치고, 침을 뱉어야 할 때는 퉤퉤 뱉고, 춤출 때는 중력을 극복하려는 듯 뛰어올랐던 뜨내기 조르바가 산투리(그리스 악기, 기타)를 남기고 죽었을 때 니코스는 '흙과 물과 불이 어우러져 새로운 조르바를 빚어내는 우연이 또다시 가능할까? 그런 영혼은 죽어서는 안 된다'라고 비통해한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니코스가 부활시킨 조르바인 셈이다. 그를 부활시킨 이유는 역시 조르바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다. 조르바는 그 확 트인 화끈한 영혼과 힘찬 육체로 독수리처럼 로켓처럼 하늘로 올라가는 화살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조르바가 죽으면서 두목! 당신은 사람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라고 말한 게 좋다.
바람 중에 가장 좋아하는 바람은? 나무 중에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구름 중에 가장 좋아하는 구름은? 말해 봐요. 조르바. 나는 언제나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 하지만 그가 죽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들려주지 못한 그것들이 궁금하다. 그는 만물이 태어난 이유, 그리고 스러져야 하는 이유를 궁금해 했고 오로지 가슴 아프게 죽어간 사람 때문에만 분노했다. 그 외의 어떤 무엇도 그의 영혼을 파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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