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
김동환
"'옛날 음악은 좋았는데 걸그룹과 아이돌 음악은 형편없다, 음악적이지 못하다'라고 규정내린다면 그것은 지금의 세대를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음악이란 각 세대들의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거든요. 지금 시대의 음악들은 지금의 세대를 잘 반영하고 있어요." 균형과 인정.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는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한 시간 반 동안 유난히 두 개의 단어를 반복해서 떠올리게끔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와 그가 읽어온 책, 가치관, 음악에 대한 생각들은 여러 이야기를 하나의 주제로 묶은 한 권의 책을 연상시켰다.
그는 "책은 별로 읽어본 기억이 없다"면서도 '나의 애장서' 인터뷰를 통해 "<데미안>을 읽으며 나 자신을 성급하게 규정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를 읽으며 삶의 균형감각을 키웠다"고 털어놨다. 임씨는 "맹신하던 것에서 한 발짝 떨어져보면 그 반대편에도 지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며 이런 사실을 깨닫게 해준 책으로 미국의 역사학자 존 브룸필드의 <지식의 다른 길>을 소개하고 직접 서명한 후 '책 나눔 캠페인'에 기부했다.
"책을 읽으며 머리를 채우고, 음악을 들으며 가슴을 채우잖아요"- '음악평론가'라는 흔치 않은 직업을 가지게 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부터 고등학교 1학년 입학하기까지 시간이 좀 길어요. 그때 우연히 음악을 접하게 되었지요. 그리고는 정신없이 듣기 시작했어요. 존 레논, 카펜터스, 로보, 레드 제플린, 이장희, 신중현, 송창식, 김정호 등의 뮤지션들에게 완전 매료됐죠. 그때부터 목표를 음악평론가로 정했고 그 뒤로 37년째 그 목표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어요."
- 오늘은 음악이 아니라 책을 추천하게 되셨습니다. 평소 책을 즐겨 보시는 편인가요?"많이 읽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대중음악은 사람들을 쉬게 하는 분야고 위로와 위안을 하는 분야잖아요. 그런데 음악평론가나 음악 관계자가 글을 쓰면서 인문학적 언어를 나열하는 것이 적당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물론 음악을 이해하고 더욱 사랑하는 방법으로 책을 보기도 하지요. 음악 속에 공부가 있지 공부 속에 음악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한때는 소설에 빠져서 당대에 내노라 했던 작품들은 많이 읽었습니다. 최인훈의 <광장> 같은."
- 어떤 책들이 인상적이었나요?"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만한 책은 역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죠. '내가 둘일 수 있구나', '내가 모르는 내가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 자신을 성급하게 규정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데미안>에 나오는 막스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동일인물이지만 처음에는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다르잖아요. 제가 어떤 나약함에서 벗어나는데 위안을 줬던 책이지요. 소록도의 나환자들을 무대로 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청소년들에게 '강추' 하고 싶은 책입니다. 신군부 독재가 시퍼렇던 1980년대 초반에 읽었던 <장길산>도 기억에 남고,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는 제 삶의 균형감각을 키워줬던 고마운 책들이죠.
저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책 읽기, 특히 어릴 때 책 읽기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0대 때는 책을 읽어 머리를 채우고 음악을 들어 가슴을 채우는 거지요.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상태에서 이성과 감성을 체화해가는 과정. 그 중에서도 책은 최소한의 이성과 지식을 갖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어디에나 '다른 길'은 항상 있음을 잊지 말아야"
- 기증하시는 책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립니다."<지식의 다른 길>은 말 그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이외의 다른 지식을 얻을 줄 알아야 한다는 내용의 책이에요. 저자인 미국의 역사학자 존 브룸필드는 이 책에서 지금 서구 문명이 젖어있는 기계론적 사고 이외에도 '지식의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지요. 이를테면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영화를 보면 뛰어오는 소를 멈추게 하는 장면이 나와요. 등장인물이 자연에서 터득한 소리와 음악을 가지고 뛰어오는 물소를 세웁니다. 산업사회의 지식으로 물소를 세우려면 어떤 기기나 무기로 막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소리와 음악으로 물소를 세운다는 것은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지식의 다른 길'이라는 얘기입니다.
이 책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학문들은 단기간에 이뤄진 지식에 불과하다면서 그것만을 과신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아담 스미스나 칼 마르크스보다 더 중요한 지식은 간디라는 거죠. 전일적이고 총합적이며 자연적인 지식을 강조하고 있는 셈입니다. 저는 이 책이 중·고등학생들의 필수 지침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맹신하던 것에서 한 발짝 떨어져보면 그 반대편에도 지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이를테면 음악에서 다양한 취향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인가요?"그렇지요. 음악은 세대의 산물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옛날 음악은 좋았는데 걸 그룹과 아이돌 음악은 형편없다, 음악적이지 못하다'라고 규정 내린다면 그것은 지금의 세대를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말도 안 되죠. 음악이란 각 세대들의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거든요.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많습니다. 물론 지금이 훨씬 더 상업화되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 시대의 음악들은 지금의 세대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 아이한테 김현식 음악을 들려주면 '구리다'고 해요. 지금 그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가까운 것은 정엽의 음악일 수 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