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에 오염된 도로 위로 학생들이 오가고 있다(2011년 11월 4일)
환경보건시민센터
2011년 가을, 서울의 한 주택가 도로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선이 측정됐다. 이 사건은 같은 해 3월 옆 나라 일본 후쿠시마의 핵발전소가 붕괴돼 엄청난 양의 방사능 물질이 누출됐다는 소식에 놀란 시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즉각 도로의 방사선 노출량과 방사능 물질에 대해 조사했다. 그리고 매일 1시간, 10년 동안 도로 위에 있었음을 가정했을 때, 관리 기준치의 절반 정도 양에 노출될 수 있다면서 시민들을 안심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해명은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했다. 결국 서울시는 시민단체의 권고를 받아들여, 도로 방사능 노출이 주민 건강에 준 영향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역학조사 결과 주민들의 평균 방사능 노출 수치는 기준치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도로에 인접해 있는 일부 상가나 주거지에서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수십 명은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에 노출된 것으로 추정됐다. 조사 과정에서 주민들은 방사능 노출로 인한 건강 모니터링과 관리, 환경관리를 잘 해달라고 요구했다. 서울시는 이러한 요구에 기반하여 주민 건강진단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방사능 문제를 포함한 생활환경보건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를 위해 새로운 조직을 설치하는 등의 정책을 수립하였다.
이 사건은 몇 가지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우선 도대체 도로를 오염시킨 방사능 물질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혹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하는 사이에 생활 도처에서 방사능에 노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또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기준치 이하의 노출'이라고 단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소위 '민원'에 대한 역학조사를 수행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었을까, 이는 오히려 주민들의 방사능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조장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들을 낳았다.
도로를 오염시킨 방사능 물질의 출처는 결국 밝혀낼 수 없었다. 초기에 여러 가지 '가설'이 제기되었다. 첫 번째 가설은, 도로를 포장한 아스콘에 섞인 골재가 방사능에 오염되었을 것이라는 설이다. 과거 일본에선 산업폐기물에 해당하는 것들을 많이 수입한 뒤 이를 재활용하여 건축 자재나 골재 생산에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핵발전소에서 나온 오염된 산업폐기물이 섞여 들어왔을 가능성이 의심되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방사능에 노출되고 있었다?두 번째 가설은, 도로 아스팔트 포장 중 두께와 단단함을 측정하기 위해 비파괴검사를 실시하는데, 이때 사용되는 장비에 세슘이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로 포장 시에 종종 발생하는 사고로 인해 이 검사장비가 파손되어 세슘이 흘러나와 도로를 오염시켰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 경우라면 세슘의 오염 정도가 도로 전체에서 균질하게 측정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 가설도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되지 못했다.
그 외에 인근 핵 관련 작은 연구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이 수송과정에서 도로를 오염시켰을 것이라는 의심 등이 있는데, 어느 하나도 확실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고 있다. 해당 도로는 10여 년 전에 포장되었고, 당시 포장공사를 시행했던 업체는 이미 오래 전에 폐업하여 어떤 기록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원인이야 어떻든 이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방사능오염에 대해 지금까지 놀랍도록 둔감했다는 사실이다. 단지 시민들이 방사능의 위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는 점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여러 제도가 이러한 방사능 문제를 거의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놀라움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방사능에 노출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의심으로 확대되기도 하였다.
도로 방사능 오염 사건 이후, 벽지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었다든지, 컵을 거는 식기 등에서 방사능이 발견되었다든지 하는 사건들과 병원의 일부 구역과 환자에게서 매우 높은 방사선이 검출된다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사실들이 언론에 보도됐다. 이처럼 도로 방사능 오염 사건은 생활에서 일어나는 방사능 노출에 대해 눈을 뜨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생활 주변의 방사능 환경은 대부분 우주와 지구가 탄생하면서부터 만들어진 '자연 방사능 물질'에 의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가 노출되는 전체 방사선량 중 80% 이상이 자연방사선으로부터 오고, 이중 50%가 라돈에 의한 것이다. 인공방사선 노출은 20% 정도를 차지하는데, 대부분 의료용 방사선이 차지하고 있다.
일부 지역의 토양에서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방사능 물질인 라돈가스가 나온다. 라돈이 섞인 공기를 자주 마시게 되면 폐암과 같은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우리나라 지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화강암에는 자연방사능 물질이 많아 감마선에도 빈번하게 노출될 수 있다. 비행기 여행을 하면서도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중성자와 같은 우주방사선에 노출된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도 자연적으로 포함된 방사능 물질들이 있다.
의료용 방사선 노출량, 의료수준 높은 나라일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