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김진석
-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시민의식도 어느 정도 성숙돼있지 않나?"그렇지 않다. 그건 시민사회나 지식인들이 모두 착각하는 거다.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섰을 때는 민주주의가 가장 성숙했을 때다. 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세계 최고의 민주 헌법으로 평가 받는 바이마르헌법이 제정된 상황이었다.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유럽에도 극우파가 득세하고 있지 않나. 경제 위기가 봉착하면 어떤 똑똑한 국민도 국민 전체의 집단최면에 의해 파시스트 정권을 탄생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70여 년의 세월 중 민주화 돼 있던 기간은 고작 11년뿐이다. 60년 4.19혁명 뒤에 1년, 그리고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 그 11년 동안 어떻게 민주화 가치를 보편화시키겠나. 못 한다. 더구나 지배층의 허위이데올로기로부터 영향을 받기는 쉽다."
- 우리 국민의 민주의식이 그만큼 후퇴했다는 뜻인가."이명박 정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정치가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은 전 국민을 참되게 살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부의 공직자들이 이런 정권과 정책 하에서 정직하고 참되게, 죄의식 느끼지 않고 복무할 수 있을까? 가령, 판사들은 그야말로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할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검찰은, 경찰은, 교육자는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공직자뿐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높은 연봉을 받고 있지만 과연 일말의 아픔이나 갈등을 겪고 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최근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 윤석열 수사팀장의 배제 등 일련의 사태가 보여주듯이 조금만 양심을 지키면 쫓겨나는 판이다. 전 국민들로 하여금 양심을 지키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불의와 부정을 옹호하거나, 묵인하는 가치관이 전 사회에 만연해 있지 않으가. 죄와 무죄의 구별이 사라지고 다만 권력을 지지하느냐 안 하느냐라는 이분법만 남는다."
"이 정부에 설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 종교계를 시작으로 국정원 대선개입과 관련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너무 하지 않느냐는 것을 점점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더 심각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다. 이 정권에는 '설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나. 설마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상식을 뛰어 넘는 일을 저지른다. '설마 부정선거를 저지를까', 했지만 저지르지 않았나.
도둑질에도 도가 있듯이 독재에도 일정한 품격이 있는데, 품격이 없는 독재가 있는데 바로 파시스트다. 그저 탄압밖에 모른다. 국민들이 뻔히 잘못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그냥 넘어가지 않나. 이렇게 해서 과연 권력이 유지될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류사가 보여준다.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헤겔의 말을 빌리자면, 한 사람이 자유로운 체제를 절대왕정, 소수가 자유로운 체제는 귀족정치, 그리고 다수가 자유로운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했는데, 그 동안 우리나라 독재는 그나마 소수의 자유가 있었다. 지금은 1인만 자유로운 시대다. 통치자 한 사람 외에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닌가 싶다. 이런 체제가 얼마나 갈 수 있겠는가. 지난 1년간 박근혜 정권이 보여준 행태가 계속된다면 권력 내부에서부터 누수현상이 일어나 결국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