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권우성
안경환 교수는 이에 대해 "자유로운 의사형성 과정에서 중립을 지켜야할 국가기관이 특정 후보에 유리 또는 불리하게 개입했다는 명백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것은 선거 자체를 공정하게 볼 수 없는 요소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 수혜자든 아니든 사실이 어느 정도 밝혀진 상태라면 현직 대통령이 그 문제에 대해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안 교수는 형사사건을 전제로 '독수독과(毒果毒樹)' 이론을 예로 들면서, "만약 선진국이라면 당연하게 선거 무효 주장이 제기됐을 것"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이 사안은 그 나라 민주주의의 성숙도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 같은 주장이 쉽게 제기되거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헌법의 경직성'에서 찾았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유고 사유를 굉장히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럽의 의회제도라면 이런 경우 선거를 무효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새로운정치위원회' 위원장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 대선 패배에 대해 "당 전체가 (문재인 후보를) 단일후보로 여기고 전력투구를 하지 않"았던 것을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이어 1년이 지나도록 민주당이 국민의 기대만큼 혁신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는 "선거의 연장"이라며, "당 전체가 하나로 결집이 안 되니까 당 차원의 계획도 나올 수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박근혜 정권에 대해서는 '소통'에 나서지 않는 모습을 가장 아쉬운 점으로 꼽으며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굉장히 모자라다. 아쉬운 정도를 넘어 역시 잘못 뽑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이 보여주는 모습이 모두 실망스럽지만 "그럼에도 도도히 흘러가는 역사의 방향이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더 나아질 거란 기대와 믿음이 있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아래는 안경환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인터뷰는 지난 7일 서울 방배동 한 커피숍에서 약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됐다.
안경환 교수는 서울대 법대 학장과 한국헌법학회 회장, 법무부 정책위원장 등을 거쳐 2006년 제4대 국가인권위원장에 발탁되었다가 2009년 임기를 이명박 정부와의 갈등 끝에 넉 달 남기고 스스로 물러났다. 지난해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 캠프 '새로운 정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정치개혁안을 내놓기도 했다.
- 민주당 장하나 의원의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1년이 지나도록 대선이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데, 민주당 문재인 후보 선거운동본부에 참가했던 분으로서 어떤 기분이 드는지 궁금하다."선거가 끝난 지 1년이 지나도록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들이 계속 불거지고 급기야 선거 자체의 불복이나 무효, 또는 대통령의 하야 문제까지 일부에서 거론되는 건 굉장히 불행한 일이다. 승자가 된 박근혜 대통령이나 패자인 문재인 의원에게나, 국민에게나 다 같이 불행한 일이다. 대단히 안타깝다."
- 지난 대선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는 게 사실이다. 헌법학자로서 지난 대선을 우리 헌법에 비춰본다면 어떤 평가가 가능하다고 보나."기본적으로 헌법 정신이란 건 공정한 선거가 보장되는 가운데 유권자들이 자유로운 의사로 참여해 표결하고, 그 표결 결과가 아무런 착오 없이 집계되어 모두가 그 결과에 승복하도록 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나라는 이미 투표와 개표 과정에서의 부정은 존재하지 않는 단계에 왔다고 본다. 과거 자유당 시절처럼 투표 행위 자체에 누군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고, 개표도 기본적으로 클리어하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유로운 의사형성 과정에서 중립을 지켜야할 국가기관이 특정 후보에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개입했다는 명백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것은 선거 자체를 공정하게 볼 수 없는 요소가 된다.
물론 그것이 결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가는 산술적으로 정확히 밝히기 어려운 문제다. 그렇지만 의사형성 과정에 국가기관이 공정하지 않게 개입했다면 반드시 밝혀야 하며, 그 수혜자든 아니든 사실이 어느 정도 밝혀진 상태라면 현직 대통령이 그 문제에 대해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패인, 당이 전력투구 하지 않은 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