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희 강원교육감.
성낙선
- 2010년 강원도 초대 직선 교육감으로 당선됐다. 그 후로 강원도 교육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진보교육감으로서 주로 어떤 변화에 초점을 맞췄나?"나를 진보교육감이라고 하는데 맞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또 보수교육감이기도 하다. 먼저 진보교육감이 확실히 맞는 게 뭐냐면, 지난 1월 강원도 학교장 연찬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강원교육의 현재가 대한 교육의 미래다. 우리가 한 발 앞서가지만 머지않아서 온 나라가 우리 정책을 따라올 것이다.' 이렇게 얘기했다. 그런데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 4월 4일 시도교육감들하고 서남수 신임 교육부 장관하고 교육부 정책 브리핑을 듣는 자리가 있었다. 난 그때 박근혜 정부의 교육 정책을 브리핑 받으면서 감개가 무량했다. 우리가 3년 전에 했던 정책의 상당 부분이 들어 있는 걸 보고, 올해는 이전 장관 시절보다 일하기가 수월하겠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 면에서는 한 번 앞서가는 진보가 맞다.
하지만 내겐 또 보수적인 측면도 있다. 진보도 중요하고 변화도 중요하지만, 원래 교육이 가져야 할 올바른 가치는 꼭 지키고 보수해야 한다. 그런 것들은 반드시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진정한 교권을 확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든지, 또 작은 학교를 살려나가는 정책 같은 것들은 우리가 변함없이 지켜내야만 하는 것들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보수교육감이기도 한 것이다. 교육 문제에서는 무조건 진보다, 보수다 그렇게 가를 것이 아니다. 진보가 필요할 때가 있고, 보수가 필요할 때가 있다. 교육 문제를 다룰 때 나는 그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럼 보수와 진보를 떠나 교육감으로서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했던 정책은 무엇인가?"교육감이 되고 나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일은 고교 입시제도 개선이다. 고교 평준화 사업인데, 다른 일에 앞서 그것을 먼저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인해서 파생되는 문제가 여러 가지다. 교육 과정의 파행이라든지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게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고교 평준화 제도를 되살리는 데 꽤 애를 먹었다. 강원도에서는 아마 가장 성공하기 힘든 일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당시 교과부는 '고교 평준화를 위한 부령 개정'을 안 해주면서, 그 문제를 시도의회에 떠넘겼다. 시도의회가 또 고분고분하게 나올 리가 없다. 그 바람에 고교 평준화를 당초 계획보다 일 년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일 년 후에 해냈다. 강원도가 비평준화 지역이 된 지 20여 년 만이다. 그래서 올해 다시 평준화를 시작하는데 사실 걱정도 많이 했다. 혹시 민원이 많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조용했다. 전화로 몇 분이 항의를 해왔고, 집단행동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이 문제를 도민들이 아주 성숙하게 받아들였다."
- 고교 평준화 말고도, 그동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업들이 여러 가지가 있었다. "친환경무상급식지원을 지난해에 초등학교, 올해 중학교까지 실시하고 있다. 내년에는 고등학교로 확대한다. 도민들한테 강원도교육청에서 가장 잘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첫 번째가 친환경무상급식지원을 제일 잘한 것으로 뽑고, 그리고 두 번째 잘한 것으로는 작은 학교 희망 만들기를 꼽았다. 거기에 나는 또 모든 학교에 교무행정사를 배치한 것을 꼽고 싶다. 이전에 교사들에게 교원 전문성 향상을 위해서, 가르치기에만 전념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걸 실행에 옮겼다. 교사들은 이제 학교에서 잡무 처리를 안한다. 그 시간에 생활지도라든지 상담이라든지, 수업에 전념하게 했다.
그 외에 도교육청이 추진한 사업으로 비정규직의 교육감 직고용,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이 있다. 이건 강원도가 전국에 앞서서 한 것이다. 비정규직과의 단체교섭도 제일 먼저 했다. 교사 연수 같은 것도 예전에는 집합 연수, 강제 연수였다. 그런데 이제는 교사들이 희망하는 연수를 받게 하고 있다. 연수원 프로그램도 대폭 바꿔서 교사들이 만족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연수원은 우리가 지난 정부 시절에도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 교육 정책뿐만 아니라, 교육청 내 직장 문화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무엇보다 권위주의를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다. 권위는 교사들이 학부모들이 인정해주면 좋은 거다. 내 스스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제 학부모 행사에 특강을 나갔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자고 해, 나중에는 제발 좀 봐달라고 해서 빠져나왔다. 요즘은 내가 직접 커피를 타서 마시고, 또 손님을 대접하기도 한다. 세계 여성의 날에 여직원들의 의견을 들었다. 그때 커피 문화를 바꿔 달라는 의견이 있었다. 그 후에 내 스스로 바꿨다. 회의 때 과장들에게 내가 직접 타주고 했더니 과장들도 여직원들에게 커피를 주문하던 습관을 모두 바꿨다. 이제는 남자 직원들이 여직원들에게 커피를 타 주기도 한다.
내가 어떻게 하라고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게 말없이 퍼져 나가 지금은 일선 학교 교장들도 많이 바뀌었다. 학교 방문 문화도 바꿨다. 교육감이 학교를 방문한다고 하면, 아무리 간소화한다고 해도 여러 가지로 번거로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10분 전, 5분 전에 학교 방문을 알린다. 그리고 바로 들어가서, 딱 두 가지만 보고 나온다. 서류나 성적 이런 거 보는 게 아니다. 아이들 표정과 교사들 표정, 이 두 가지다. 학교가 어떤지는 그 두 가지를 보면 알 수가 있다."
- 보수적인 강원도 교육계에 변화를 준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교육감으로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왜 없었겠나? 교육감 되고 나서 첫 번째 교장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 때 첫 마디를 이렇게 꺼냈다. '저 안 찍은 분들 손들어보세요' 했다. 그랬더니 한 사람도 손을 들지 않더라. 그래서 '감사합니다. 저를 이렇게 성원해주셔서…' 그러고는 다 같이 웃었다. 그 분들이 처음엔 부정적이었다. 겉으로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속으로는 '그래 어디 두고 보자'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 그랬다. 그런데 하루하루 지나면서, 꾸준히 강원도교육청이 사업을 진행하는 걸 보더니 '아 이게 되겠는데, 될 수 있겠다, 된다' 이렇게 바뀌었다. 우리가 교육적으로 올바른 일 추진하고 그 방향으로 꾸준히 가면 그분들도 안다."
"작은 학교 통폐합? 과밀학교를 분산하는 게 더 효과 커"- 교과부로부터 다른 진보교육감들이 모두 고소고발을 당했는데 유일하게 민 교육감만 고소고발을 당하지 않았다."나도 지금 아마 몰래카메라에 찍힌 게 엄청 많을 거고, 보고 들어간 것도 엄청 많을 거다. 실제로 내가 친구들 하고 어디 대포집 가서 무얼 먹었는지도 다 알고 있더라. 그래 가지고 예전에 조그맣게 기사도 났었다. 그걸 보니까 이게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느 세력인지는 모르지만, 사찰을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한테는 큰 문제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