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교부받은 당선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유성호
박근혜 당선자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가 과반수를 얻었다 해도 여전히 절반의 대통령이다. 나머지 절반이 박근혜 후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권자의 48%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으며, 그에게 간 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당시 얻은 것보다 300만표 이상이 더 많다.
박근혜 당선자가 절반만 얻은 건 표만이 아니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30대, 40대는 문재인 후보를 더 많이 지지했다. 20대의 65%, 30대의 66%, 40대의 55% 이상이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다. 한국의 현재를 이끌어가고 있고, 미래를 이끌 젊은이들이 박근혜 당선자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가 거부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를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불순한 사상에 물들어서 그럴까? 현실의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20대, 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곧 투표권을 쥐게 될 10대의 사망원인 1위도 자살이다. 40대는 1위가 암, 2위가 자살이다. 이들은 현재 선거결과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저 지지하던 후보가 당선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어렵게 될 오늘과 내일의 삶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5년간 멋대로 권력을 휘두를 자격이 주어진 게 아니며, 국민이 누굴 대통령으로 뽑았다고 해서 침묵한 채 그가 하는 일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민주국가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케네디 대통령도 말하지 않았던가. 정부는 시민의 하인이지 주인이 아니라고.
오히려 '승복'해야 할 사람은 유권자가 아니라 박근혜 당선자다.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자신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국민 절반의 고통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면, 박근혜 정부 5년은 보수세력의 무덤이 될 것이다.
'가장 진보적 대통령' 부른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의 재임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은 한국의 2012년은 미국의 2004년과 비슷하다. 무수한 과오, 실패, 부패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이 다시 집권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무책임한 전쟁을 시작해 젊은이 수천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부자감세로 심각한 사회양극화와 재정적자를 초래했으며, 친기업 탈규제 정책으로 경제위기를 불러왔으면서도 보란 듯이 재선에 성공했다.
물론 부시의 재집권에는 '친근하고 서민적으로 보이는' 후보의 인간적인 매력과 언론매체의 무비판적 보도가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진보세력은 '미국 민주주의는 종말을 고했다'며 좌절했고, 일부는 '도저히 이 나라에 살 수 없다'며 심각히 이민을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절망은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