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포스터. 빅토르 위고 원작의 이 영화는 제목이 말해주듯 '비참한 사람들' 또는 '극빈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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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들을 위한 일인데도,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하는 일인데도, 사람들은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바리케이드를 쌓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의자에 책상이며, 심지어 아끼는 피아노까지 내주지 않았던가.
하지만 진압군이 밤처럼 다가오자, 사람들은 피 흘리며 절규하는 학생들에게 팔 하나 숨길 문틈조차 내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두려움 속에 사는 사람들을 구하겠다'며 나선 청년들은 총탄을 비처럼 맞으며 쓰러져 갔고, 변화를 꿈꾸던 젊은이들의 '철없는 반란'은 이렇게 간단히 진압되었다. 아니, 적어도 당시에는 그렇게 보였다. 1832년, 파리.
<레 미제라블>이 한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관객 수를 늘려가고 있다. 개봉 일주일 만에 200만 명을 돌파해 관객수와 예매율 모두에서 1위를 차지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이 영화가 '대선 후유증'을 달래는 '치유제'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한다.
대선결과, 그 충격적인 '미스터리' 이해할 만하다. 한국사회의 변화를 갈망하던 젊은 세대는 <레 미제라블>의 시민군 이상으로 절망감과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왜 변화를 원했는지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 가지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1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20대 사망원인 1위도 자살이며, 30대 사망원인 1위 또한 자살이다.
이들이 40대가 되면 달라질까? 물론 변화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암 사망률이 자살률을 2위로 밀어내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돌연사 비율 역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세계 최장 노동으로 인한 과로와 허술한 의료복지가 결합한 결과가 아닐까. 2012년 5월 영국 BBC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인은 한 해 평균 2193시간을 일한다. 2위인 칠레보다 무려 125시간을 더 일한다. '비공식 업무시간'을 뺀 통계가 이렇다.
이 젊은 유권자들이 당선자가 아닌 다른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절망과 과로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변화를 꿈꾸는 게 놀라운 일이었을까? 하지만 이들이 맞닥뜨린 대선결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였다.
선거 전만 해도 온 사회가 젊은 세대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고, 심지어 그들과 함께 싸워줄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사회 분위기가 얼마나 심상찮았으면, 보수정당 후보가 '반값 등록금,' '선행학습금지,' '4대 질환 전액 국가부담' 같은 공약을 내세웠겠는가.
2012년, 한국. 변화를 꿈꾸던 청년들의 기대는 허망하게 무너지고 만 것일까?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보인다. 그렇다면 <레 미제라블>의 선풍적 인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좌절한 세대가 영화를 통해 실패한 꿈을 되새김질할 뿐이라면, '힐링'보다는 '자학' (혹은 '헬링')에 가깝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