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노점에서 컵밥을 먹는 이규정 시민기자.
이규정
참신한 기사, 깨알 같은 기획. 노량진 '명물' 컵밥을 다룬 기사를 봤을 때 들었던 느낌이다. 일상에서 소재(뉴스)를 찾았다는 점에서 참신했다. 후속 기사를 챙기면서 2000원짜리 컵밥으로 대기업을 비판하는 모습도 좋았다.
지난 4월 7일의 일이다. 이규정 시민기자에 의해 서울 노량진에서 벌어지는 '컵밥 전쟁'이 세상에 알려졌다.(관련 기사:
2000원 컵밥을 둘러싼 '노량진 전쟁'을 아십니까) 이 보도 이후 여러 방송과 신문이 후속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이 기자는 대기업이 컵밥을 파는 행위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서민 경제 영역을 대기업이 침범했다는 판단이다. 이번에도 다른 매체가 이 기자의 보도를 따라왔다.
이규정 기자는 자칭 타칭 '컵밥 전문기자'로 불린다. 컵밥 기사로 <오마이뉴스> '4월의 새 뉴스게릴라' 상도 받았다. 컵밥 전문기자의 컵밥 기사는 끝나지 않았다. 그는 현재 새로운 기획을 하고 있다. 어쩌면 컵밥의 운명은 그에게 달려 있는지 모른다. (
이규정 기자가 쓴 기사 보기)
이규정 기자는 홍익대학에 다니는 건축학도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컵밥에 관심을 갖게 됐지? 아래 일문일답을 보면 알 수 있다.
- 컵밥 기사가 확 떴다. 느낌은?"짜릿할 정도로 기뻤지만 인터뷰했던 지역 식당 주인이 마음에 걸렸다. 5평짜리 분식집에서 장사하는 분인데 가게 바로 앞에서 한 아저씨가 컵밥을 팔았다. 그분은 실질적인 피해를 보고 있었다. 언론보도 나오기 전에 컵밥 노점상들은 구청 요구대로 밥을 안 팔 예정이었다. 그랬다면 그분 형편이 조금 나아졌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렇게 쉽게 사라질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서 썼다. 컵밥 기사들이 3대 포털에 올라가고 검색어로도 떴다. '컵밥전쟁'을 세상에 알렸다는 기쁨이 크고 논의의 장을 만들어서 뿌듯하다."
- 컵밥 기사를 어떻게 기획했나. "사실 우리 집이 컵밥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밥 차리기 귀찮을 때 가끔 컵밥을 사먹었다. 3월 말쯤 컵밥을 먹으려고 컵밥집에 갔더니 주인이 밥 대신 서명부와 펜을 줬다. 이유를 물어보니 '구청에서 컵밥을 없앤다고 해서 이렇게나마 해보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왜 없애려는지 궁금했다. 컵밥 노점상들을 만나 상황을 듣고 보니 큰 문제다 싶어 기획했다."
- 일각에서 '컵밥 전문기자'라고 부른다. 맘에 드나."기분 좋다. 새로운 컵밥 아이템이 떠오를 정도다. 그리고 컵밥은 단순한 길거리 음식이 아니다. 컵밥은 고시생,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들에게는 전투식량과 같다. 이들은 '고시'라는 인생의 큰 전쟁을 치르며 시간을 쪼개 쓴다. 이런 사정도 '컵밥 전문기자'가 다룰 사회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깊이 더 취재하라는 뜻으로 그 호칭을 감사히 듣고 있다."
- 그런데, 아쉬움이 좀 있다. 후속 기사가 다소 늦게 나오는데."노량진 컵밥 파는 곳과 집이 가까우니 현장을 계속 주시할 수 있다. 어떤 변화가 있으면 바로 쓸 게 아니라 추이를 지켜본 다음에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구청의 '컵밥 판매 금지' 공문이 나간 후 일 주일 정도 사태를 지켜봤고, 호일밥(주먹밥)이 등장한 후 일 주일 정도 지켜봤다. 빨리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정확한 기사를 쓰려면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 앞으로도 계속 컵밥을 보도할 예정인가?"그렇다. 아직 '컵밥 전쟁'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사실상 컵밥 노점상들은 식사류(밥종류)를 팔지 말라는 구청의 명령(?)에 주먹밥을 팔고 있다. 여전히 지역 식당상인과 노점상 주인들은 이 문제로 심도 있게 얘기해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