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의 전략가인 람 에마뉴엘과 브루스 리드가 지은 <더플랜>을 번역한 안병진 교수가 8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강의하고 있다.
남소연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안병진 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대통령학을 전공하고 미국정치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정치 전문가다. 8일 저녁 다섯번째로 열린 '노무현이 읽은 책들' 강독회 강사로 나선 안 교수는 오바마 열풍이 일어날 수 있었던 징후를 2004년 대선 후보를 뽑는 민주당 경선에서부터 찾았다.
바로, 하워드 딘이다. 애국주의 열풍 속에서 용감하게도 '나는 이라크전에 반대한다'고 연설하자, 인터넷에서는 '딘 현상'(Dean Phenomena) 혹은 '딘풍'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안 교수는 '딘풍'의 핵심을 '용기'라고 단언했다.
하워드 딘은 자신의 야망을 이루진 못했지만, '딘풍'에서 나타난 미국 유권자들의 바램은 TV드라마 '웨스트 윙(The West Wing)'의 공전의 히트로, '더 플랜', 버락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에 대한 미국인들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안 교수의 분석이다.
화가 난 낙농업자들 앞에서 연설하게 된 대선 후보가 "나는 빈곤 속에서 사는 어린이들의 우유구매가 힘들어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낙농계약에 반대 투표를 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에게 뭔가 다른 것을 기대한다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투표하십시오"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수많은 미국인들의 눈물을 뽑아낸 '웨스트 윙'. '선거에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보다는 '미국을 위해 민주당이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역설하며 반향을 일으킨 '더 플랜'.
안 교수는 "새로운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읽고 그 흐름 속에서 정치인 본인이 망가지더라도 용기 있게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전투적 혼을 누가 갖고 있는가, <더 플랜>과 <웨스트 윙>은 이런 것을 보여줬다"고 역설했다.
안 교수는 이어 "미국인들이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에 열광한 것은 담겨 있는 세부적인 정책들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관통하는 '혼' 때문이었다"라고 진단했다. 마찬가지로 "'더 플랜'에는 대담한 정책들이 제시되진 않지만 유권자들이 갈망했던 '혼'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책광과 정치꾼이 결합해야... 노무현은 후반기로 갈수록 정책광"<더 플랜>의 저자들은 정책광과 정치꾼이 결합해야 올바른 정치가 될 수 있다면서 클린턴 행정부의 경험을 예로 들고 있다. 국민들의 마음에 있는 진짜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여론조사 결과에 의존하는 정치꾼들이 필요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선 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정책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96년 대선에서 클린턴의 재선에 큰 공헌을 했던 '가치 아젠다 프로그램'을 정치꾼과 정책광이 잘 결합한 결과로 평가했다. 아이들이 폭력성 TV 프로그램을 못 보도록 하는 V-chip이나 학교 주변 범죄를 줄이기 위한 교복착용 정책 등과 같이 중산층의 생활과 밀착한 정책들은 언론매체와 고소득의 여론주도층에게는 조롱의 대상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클린턴의 지지도는 오르기 시작했다.
미국 중산층들이 '클린턴이 우리를 위해 뭔가 하려고 한다'는 신호를 읽고 지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국민의 여론을 정확히 읽은 정치꾼과 정책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한 정책광들이 적절하게 결합돼 클린턴에 대한 중산층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는 것.
안 교수는 정책광과 정치꾼에 대해 설명하면서 가장 정치꾼적인 정치인으로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꼽았다. 정책은 엉망이었지만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데에는 탁월했다는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를 내렸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책광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정책광적으로 갔던 면이 있다"고 말했다.
"웃기지 마라, 문제는 프레임이 아니라 혼을 잃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