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가 박종철 열사 추모시를 낭독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중략) 몸은 죽었지만 정신과 혼은 살아있는 그대
살아있으면서도 자주 죽어있는 우리를
겨울바람처럼 흔들어 깨우며
맑고 깊은 말을 건네주니 고마워요(중략)"
추모시 낭독 뒤엔 박정기씨가 연단에 섰다. 그는 "그(열사)는 이미 20년 전에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 이후 온 민중의 함성이 안방, 거리 할 것 없이 노도와 같이 일어나 하나의 깃발이 됐다"면서 "오늘은 그 깃발을 이곳 대공분실에 꽂는 날이다"며 목청을 높였다. 이어 "온 세상이 평온하게 사는, 고문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 토로했다.
박 열사의 고등학교, 대학교 동문인 김치하(43)씨는 추모식 뒤 인터뷰에서 "아직 6월 항쟁은 완성되지 않았다"면서 "종철이가 '민주화의 희생자'가 아니라 '민주화의 주인공'이 되는 그날까지, 통일을 비롯한 그가 바라던 꿈들이 실현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 열사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내 거처를 밝히지 않았던 박종운(한나라당 부천 오정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씨는 "모 일간지 1면 보도를 통해 그의 죽음을 접했다, 놀라고 분개했다"고 87년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더 열심히 싸워 독재정권을 무너뜨려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그는 "6월 항쟁, 민주화 이후 아직도 미진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국민의 선택을 무시하고 가로막는 반민주주의를 타파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화'라는 거대 담론에 휩싸이지 말고 '날마다의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이곳 치안본부 대공분실은 사라졌지만 이 사회의 대공분실은 여기저기 남아 있다"면서 "산 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죽음으로 말한 것"이라고 박 열사의 희생에 의미를 부여했다.
'509호' 등 일부 '박종철 기념관' 설립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