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층에서 그린 연지 전경. 연못 곳곳에 마을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세워 놓았다.
오창환
연지에서 조금 걸어가니 만년교(萬年橋)가 보인다. 만년교는 정조 4년(1780년)에 처음 축조되었고, 고종 29년(1892년)에 연지를 정비한 신관조 현감 때 중수한 후 몇 번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무지개모양으로 쌓은 돌다리는 구조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감탄을 자아내며 주변의 수양 벚나무와 함께 개울에 비친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 명소로 유명한다.
만년교 앞쪽에는 홍살문이 있어서 이 일대가 성스러운 장소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곳은 총 165만㎡의 면적으로 1973년 도시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2년 전국 최초로 호국공원으로 재조성 되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한국의 호국공원 중 손꼽히는 곳으로 우리나라 3대 국란의 호국의 성지다.
이곳에는 임진왜란 호국충혼탑, 3·1 운동 봉화대 및 기념비, 6·25 전쟁 영산지구 전적비가 있다. 임진왜란 호국충혼탑 뒤로는 물레방아가 돌고 있다. 영산 군이 경상남도 최초로 3·1 운동이 일어났던 곳임을 기념하여 이곳에서는 매년 3·1절 기념식이 거행된단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매번 저항의 불씨를 살린 이유는 무엇일까?
호국공원에는 가파른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을 올라가니 6.25 전쟁 전적비가 있고 영산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스케치북을 펼쳤다. 오른쪽으로는 영축산이 있고 산을 타고 죽 내려오면서 마을이 펼쳐지고 왼쪽 아래에 연지가 있다. 여기서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했다.
'이 마을의 이야기는 모두 영축산에서 시작되는구나.'
마을 가까이에 있는 가파르고 화기가 있는 산. 연못을 파서 화재의 가능성을 줄이기는 했지만 마을 사람들 가슴속에 있는 작은 불꽃을 꺼트리지는 못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거나 불의를 보면 가장 먼저 열정적으로 일어나 나라를 바로 세우고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영축산의 정기를 받은 게 아니었을지.
그들의 공동체 정신이 영산쇠머리대기나 영산줄다리기를 살리는 원동력이고 3.1 민속 문화제로 면면히 이어지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어디 가나 이야기가 풍성하다. 특히 영산 마을처럼 오래된 마을에서 더 풍부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