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 전경
최서우
도산서원은 퇴계의 말년 생애가 깃든 서당이 서원 앞에 있는 특이한 구조다. 입구에서 서쪽으로 가면 농운정사라는 건물이 보이는데, 퇴계의 제자들이 머물면서 공부하던 기숙사다.
동쪽 마루는 학업공간인 시습재(時習齋, 계속해서 학습한다는 의미), 서쪽 마루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관란헌(觀瀾軒, 물결이 흘러가는 것을 감상하는 곳)이다. 관란헌과 시습재 사이 마루 뒤로는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머무는 공간인 지숙료다.
서당은 농운정사 오른쪽에 있는데, 왼쪽에는 부엌, 중간에는 퇴계가 머물렀던 방인 완락재, 오른편에는 제자들을 가르쳤던 마루인 암서헌의 구조로 이뤄져 있다. 완락은 '완상하며 즐긴다', 암서는 '작은 효험을 바란다'는 의미인데 둘 다 주자의 글에서 따온 것이다.
흥미롭게도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는 좌우로 비슷한 선상에 있는데, 권위보다는 학문의 실천을 중시하는 이황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성균관 대사성 시절(오늘날 대학 총장에 가깝다), 26세 연하의 기대승과 논쟁을 받아줬을 정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