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불렛저널> 126쪽'불렛(bullet)'은 기록에 쓰는 자기만의 아이콘을 말한다.
한빛비즈
할 일이 목록으로 남아 있으면 다음 일정을 확인할 때 이전에 한 일도 보게 된다. 그만큼 보람을 느낄 기회가 많아진다. 나를 채근하는 기록보다, 뒤에서 묵묵히 나를 밀어주는 기록이 힘이 될 때가 많다.
해낸 일이 없다고? '5분간 숨쉬기 운동'이라도 써보자(숨쉬기는 좋은 운동이다). 과거의 나처럼 거창한 것들을 적기보다 해낼 수 있을 만큼 사소하고 쉬운 할 일을 쓰고, 결과가 아닌 실행을 목표로 삼는 게 낫다. '한자능력시험 2급 따기'보다 '한자능력시험 2급 응시하기'나 '2급 준비용 책 한 권 3번 보기'가 좋다.
하루 할 일을 쓸 때도 결과가 아닌 행동 중심으로, 머릿속에 그려지도록 쓴다. '연재 초고'라고 쓰기보다 '연재글 시간관리편 초고 A4 2장 쓰기'라고 적으면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 감이 와서 손을 대기 쉬워진다. 한눈에 쓸모를 알 수 있는 물건처럼 말이다.
목표를 일이 잘 풀렸을 때와 아닐 때로 나눠서 세우면 호기심이 생긴다. 플랜A와 플랜B.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하면 변수가 생겨도 조금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 현실적인 기대를 갖는 데도 도움이 된다.
사소한 것이라도 이룬 뒤에는 충분히 기념하고 축하할 필요가 있다. 중간 지점에서 스스로 작은 보상을 주는 것도 좋다. 뿌듯함이 클수록 마음은 자연히 다음 단계로 내킨다.
나는 해낸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못 한 것은 질책하는 습관이 있어서, 앞만 보고 무뚝뚝하게 걸어나가는 자아의 등을 톡톡 건드려 알려준다. 어이, 글을 이만큼 써냈다니까? 그게 다야? 그리고 10초간 의식적으로 자아도취를 한다. 종착점만 바라보며 달렸는데 도착하자마자 다른 종착점을 보는 건 좀 슬픈 일이다.
내가 '읽개미'로 사는 법
나는 책 안 읽는 작가지망생이었다. 생업에 짓눌려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백수가 된 후에도 읽는 즐거움보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집중해 있었다.
새해를 맞으며 세운 목표는 1년에 100권 읽기.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반년 만에 목표치를 달성하게 됐다. 도파민 추구 성향과 산만함을 이용한 덕분이다. 요령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참고가 되실지도 모르니 적어본다.
나는 동시에 15권 정도 되는 책을 돌려 읽는다. 질리면 언제든지 다른 책으로 바꿀 수 있게 여기저기 책을 쌓아둔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읽되 목적을 가지고 주력해서 읽을 책과 기분전환용으로 읽을 책을 구분한다. 보통은 글을 쓸 때 참고하는 책이 주력 도서가 된다. 한 권이라도 다 읽었다는 성취감이 없으면 의욕이 식을 수 있으니 주력하는 책은 대충이라도 끝까지 본다.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은 활동하며 읽을 수 있어 덜 지루한데, 종이책은 진도를 빼기 어렵다. 그래서 종이책에도 '목록 지우기' 방식을 적용한다.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면 목차를 보고 관심 가는 꼭지부터 골라 읽고, 읽은 꼭지는 목차에 표시한다.
이렇게 서너 개를 읽고 나면 나머지를 다 표시해 홀가분함을 느끼고 싶어진다. 이때부터는 전부 표시하는 것을 목표로 마저 하나씩 읽는다. 한 꼭지를 읽으면서도 몇 번이고 남은 분량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어서, 아예 해당 꼭지 끝에 책갈피를 끼워 놓고 남은 장수가 줄어드는 걸 보면서 읽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