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하늘종종 친구가 사는 20층 아파트의 열린 옥상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탁 트인 나만의 공간에서 공상을 펼칠 때면 비로소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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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동떨어진 느낌 때문에 높은 곳이 좋았다. 강의실에서 자동으로 구석을 찾게 되는 것이나 다락방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처럼. 사람들의 언행에 쉽게 영향 받는 나로서는 물리적으로 독립되어 마음을 회복할 공간이 절실했다. 이 세계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그런 곳이 필요하다. 오롯이 자기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존재의 공간.
휴대용 안전지대
요즘 사는 집은 주변에 훌륭한 안전지대가 있다. 언제든 올라갈 수 있는 옥상이 있고, 집 바로 뒤에 아담한 절이, 그리고 웬만해선 사람을 마주치지 않는 좁은 산길이 있다. 하지만 안전지대가 꼭 장소여야 하는 건 아니다. 나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면 사람이나 행동, 시간일 수도 있다.
명상은 내가 있는 곳을 어디든 안전지대로 만드는 장치다. 에밀리 플레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 15분의 기적>에서 명상의 효과를 고루 밝힌다. 명상은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같은 산성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춘다. 명상을 시작하자마자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분비되는데, 이렇게 환희를 유발하는 화학물질은 알칼리성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포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 뇌의 신경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
명상은 ADHD인에게 필수라 해도 좋을 습관이 아닐까. 명상을 하면 직감과 국면 인식을 담당하는 우뇌가 발달한다. 좌뇌와 우뇌가 효율적으로 정보를 주고받게 되어 과거와 미래의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높아진다. 그리고 세부 사항을 넓은 시야에서 한 번에 보며 중요한 것을 감지하게 되어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줄어든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게 해준다니, 거의 내 맞춤형 치료법이다.
집 뒤의 산길에 오를 때 걷기 명상을 자주 한다. 땅에 닿는 발바닥 감각에 집중하면 호흡과 동작이 어우러지기 시작한다. 귀에 들어오는 소리를 찾아본다. 서로 다른 산새소리와 희미한 물소리, 바람이 나뭇잎들을 훑는 소리. 지나쳐가며 눈에 담는 돌과 나뭇잎 색을 최대한 많이 구별해 본다. 여기저기 흔들리는 초록도 서로 같은 초록이 아니고, 땅에 떨어진 잎의 검붉음도 같은 검붉음이 아니다.
몸의 모든 감각을 써본다. 각기 다른 색과 질감은 무슨 맛과 향이 날까. 거칠거칠한 나무 기둥은 씹는 촉감이 바삭하고, 미끈한 돌은 쫄깃하게 씹힐지도 모른다. 혹시 의외의 맛이 나진 않을까. 진홍색 꽃잎에서는 차고 달달한 민트맛이, 옅은 초록에서는 계피향이 난다고 상상해 본다. 좁은 산길이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처럼 다채로운 환희로 가득 찬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서.
햇살이 좋을 때 눈을 감으면 볕의 색깔과 무늬가 보인다. 밝은 빨강이었다가 주황, 오렌지였다가 개나리색에서 병아리색이 되었다가. 색은 번지고 흔들리며 조금씩 변한다. 내 머리에서 발끝까지 흘러내린다. 그렇게 한동안 눈을 감고 있으면 내 형체가 녹아 사라진 듯하다. 세상과 나를 구분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고, 그러므로 어디로도 달아날 필요가 없다는 생각 속에서 행복감이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