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 없는 이어짐지인들이 ‘무리하지 마’라고 말해줄 때 제일 안심되고 고맙다. 관계에 너무 많은 걸림돌을 가진 것 같아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내가 미완성 상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람마다 수용 가능한 자극의 한계는 다르고, 행복의 조건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스스로 알고 표현할 수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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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감당 못 할 급발진을 자주 하는데, 그중 하나는 작년에 2시간짜리 일반인 인터뷰를 흔쾌히 수락해 버린 일이다. 얼떨결이었다. 시민기자로서 인터뷰어가 됐을 때도 고전한 기억들이 생생하건만.
그래, 나한텐 나를 드러내는 연습이 필요해. 미리 받은 질문지를 보며 몇 번이나 대답을 연습했다. 그런데 막상 인터뷰를 시작하니 질문이 거의 다 즉흥적이었다. 속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거기에 휩쓸려갔다. 아오, 결국 치명적인 말실수를 세 개나 하고 돌아와서는, 수정을 요청하니, 전체를 취소하니, 하며 일주일을 끙끙 앓았다.
그래도 해본 게 어딘가. 나는 심심함은 잘 몰랐지만, 늘 공허했다. 누군가와 감정과 생각을 공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사 한 발 나아가려다 두 발 물러서더라도, 그것 자체가 어딘가로 나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일원으로 산다는 건 '치고 빠짐'의 연속이 아닐까. 자극 속으로 들어갔다가 안전지대로 돌아오길 반복하는 일. 사회성의 전진과 뒤처짐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내 둘레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 넘나들 수 있다면 그걸로 되는 거다.
그래서 느슨한 연대를 좋아한다. 관계의 형식에 얽매이면 자신을 드러내기가 더 어렵다. '나'로 있을 수 없으면서 '우리'를 요구받을 때, 우리는 같이 있어서 더 외로워지고, 소통보다 고립을 택하게 된다.
2년 전부터는 집에서 화상 앱으로 모임에 참여했다. 주 1회 있는 명상 모임, 달마다 하는 시민기자 교육과 환경활동가 모임 등이었다. 이것도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 용기가 필요했지만, 같은 이상을 추구한다는 점에 집중하면 내 마음의 문제가 조금 작아보였다.
강의 앱과 습관 만들기 앱에서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글쓰기 플랫폼, 심리학 동영상 채널, ADHD 커뮤니티에서 댓글로 위로와 조언도 나눈다. 평생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던 마음을 이름도 모르는 이들과의 공감으로 치유하는 경험은 신기하고 뭉클했다.
요즘은 종종 안부를 나누고 문화행사에 같이 가는 ADHD 지인들도 생겼다. 서로의 기복을 대강 이해하기에, 잠수도 거절도 무던하게 받아들이며 흘러가는 대로 흐르는 사이다.
마음을 나누는 일이 언제나 본격적일 필요는 없다. 나는 여러 집단에서 느슨하게 교류하며 관계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줄었다. 한 집단에서 유대감과 공감을 다 채우려는 욕구를 내려놓은 거다.
소통에 필요한 조건은 하나다. 다 이해할 수 없을 걸 알지만 그래도 이해에 가까워져 보고 싶은 마음. 가까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이라도 이 마음을 잊기 쉽다. 그러니 어떤 모습, 어떤 거리이면 어떤가. 나는 여기 이렇게, 당신은 거기 그렇게 살고 있으면 됐지. 당신의 매력적인 어둠을 멀리서도 알아볼 사람은 반드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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