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마을 박물관동네 어르신은 누구보다 탁월한 마을 역사 해설가이시다.
이민희
'묘장서원'(畝長影堂)이라고도 불리우는 '묘장영당'(畝長影堂)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 249호로 지정된 곳이다.
이 곳은 조선 건국 공신인 전주 이씨 양도공(襄度公) 이천우(李天祐, 1354-1417)의 영정을 봉인한 사당으로 광해군 8년(1616년)에 창건됐다. 태조 이성계의 친형 완풍대군 이원계의 둘째 아들인 이천우는 고려말 '황산대첩'을 이끄는 등 수차례 왜구를 토벌하며 무장으로 활약했다. 묘장영당은 고려말에서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격변의 시기,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며 목숨을 걸고 혁명을 선택했던 선현의 뜻을 기리고 있다.
묘장서원은 마을의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기관과 향촌자치기구 역할을 담당했다. 서원의 건축물은 선현을 배향(配享)하는 '사당', 교육을 실시하는 '강당', 수학하는 원생들의 기숙사였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로 이루어진다. 묘장서원도 조선시대 전형적인 서원의 형태를 따르고 있으며 제사와 교육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했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서원 '훼철'(毁撤) 명령에도 불구하고 신학문 보급과 인재 교육이 중요하다고 여긴 주민들에 의해 묘장서원의 강학(講學)은 계속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독립운동가 일강(一江) 김철(金澈: 1886~1934) 선생도 묘장서원에서 공부하며 뜻을 세웠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지역의 학교가 불에 타 소실되자 임시 교사로 활용되기도 했다.
묘장영당은 조선시대, 근대화 시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굵직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오랜 세월 지역 교육과 문화의 거처가 되어 왔다. 오래되고 낯선 기억으로의 탐험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곳에서 공부하고 생활했던 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라가 위기에 빠지고 국권이 강탈당하는 시련기에 그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의 문화재를 통해 역사를 만난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역사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사람들의 선택과 그 선택이 빚어낸 서사가 모인 결과이다. 이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관해 생각해본다. 역사가 딱딱한 기록물이 아닌 실재하는 의미로 되살아난다.
걸어다니는 '마을 박물관'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