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농부들의 농사 이야기학교와 마을이 함께 만드는 '어린이농부학교'.
이민희
4학년 학생들은 '어린이 농부학교'에서 첫 수확을 했다. 직접 키운 청경채가 제법 자랐다. '희망농장'의 작물들이 커갈수록 아이들의 손끝도 여물어간다. 아이들은 흙을 밟으며 농작물을 심고 가꾸면서 '나는 자연과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수확한 청경채는 각 가정의 저녁 밥상에 올랐다. 이날 밥상머리의 이야깃거리는 농부학교였다.
5학년은 산으로, 습지로 동네를 누볐다. 철쭉꽃이 만발한 장암산에 올랐다. 산의 정령들이 아이들을 맞이했다. 꽃향기 머금은 바람이 인사를 건넨다. 소나무 편백나무 빽빽한 숲이 넉넉하게 아이들을 품는다. 숲속과학교실에서 생태밧줄놀이를 하고 나무 그늘 아래서 도시락을 먹으며 꽉 찬 하루를 보냈다. 마을 습지 탐사도 나갔다. 습지 식물과 동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다 보니 시간이 모자라다. 아이들은 동네 숲과 습지가 기후위기 시대의 파수꾼 역할을 한다는 것도 체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학교 안으로 들어간 '마을'
아이들이 자주 학교 담장을 넘어야 한다. 더 많은 아이들이 더 자주 학교 밖에서 배우고 뛰어놀았으면 좋겠다. 그 기회와 여건을 만들기 위해 '묘량마을교육과정'을 계획했다. 깨움마을학교와 묘량중앙초등학교 협업의 결과다.
올해 7년차인 '깨움마을학교'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연중 운영한다. 저녁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한 동아리 활동, 마을 교육 프로그램 활동을 해 왔다. 아이들이 입시경쟁체제의 희생자가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받는 인격체로, 마을의 시민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모여 마을학교를 만들어왔다.
해를 거듭할수록 고민이 생겼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 수업과 프로그램 활동으로 보낸다. 그것도 모자라 하교 이후 학원에 가기도 한다. 대한민국 학교 교육 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았다는 것이다.
놀 시간, 쉴 시간, 잘 시간, 생각할 시간을 빼앗아 프로그램을 욱여넣었다. 시간을 빼앗았다는 것은 '권리'를 빼앗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놀 권리, 쉴 권리, 잘 권리, 생각할 권리, 행복할 권리. 그래놓고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모순이고 비극이다.
어른들이 만든 시간표 쫓아가느라 바쁜 아이들에게 '마을학교'마저 프로그램을 보태야 할까? 우리는 '마을학교 프로그램 자체를 마을교육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마을학교 활동이 프로그램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다고 할 수 있을까?
마을교육과정이라고 부르든, 방과후 프로그램이라고 하든, 아니면 그냥 학교 교육이라고 부르든 간에 상관없었다. 내용만 정해지면 자연스럽게 형식은 꼴을 갖추게 될 것이다. 중요한 건 '마을교육공동체' 안에서 학교와 마을이 '따로국밥'으로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마을 교육이 학교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교육과 결합하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마을 교육은 사변적으로 흐르거나 일회성 체험 활동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다. 더 많은 아이들이 다양하게 어울려 부담 없이 참여하므로 마을교육과정은 보편성과 공공성을 획득할 수 있다.
마을 안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