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등교 일수가 예년의 1/3 남짓에 불과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고등학교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개인적으로, 학년 초 계획으로는 올해 수업은 전부 모둠 활동이었다.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졸거나 딴청 피우는 아이를 줄이는 데는 모둠 활동만 한 게 없다. 마주 본 채 서로 대화를 하고 몸을 움직이게 만들면, 협동심과 함께 오히려 집중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게 지론이다.
실제론 활동은커녕 모둠을 꾸리지조차 못했다. 원격수업으로 시도해 보려고도 했으나, 한정된 시간에다 장비와 기술 등 준비가 부족해 금세 한계에 부딪혔다. 일단 진도에 대한 부담이 컸다. 화면을 통해 출결 확인하고 독려하다 보면 수업이 끝난다는 하소연을 익히 들어온 터다.
무엇보다도 생기부 기록을 위한 자료를 확보하는 게 급선무였다. 원격 수업은 진도를 나가는 데 활용하고, 등교해선 배운 내용을 점검하고 과제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원격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등교 수업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다.
토론을 시켜볼까도 했지만, 이내 접었다. 사전에 안내가 되었는데도,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출석률만 따지면 거의 100%이지만, 원격 수업의 효과가 사실상 없었던 거다. 하긴 집중하느냐 여부와 상관없이 클릭 한 번이면 출석 처리가 돼 유인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결국에 등교 수업은 원격 수업의 복습 시간으로 변해갔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하게 되는. 그러다 보니 게도 구럭도 다 잃게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위한 진도 나가기도 급급한데, 수행 평가에다 생기부 걱정까지 1년 내내 발만 동동 굴렀다.
모둠 활동을 개별적인 글쓰기 수업으로 대체했다. 토론은 탁월한 수업 방식이긴 하지만, 참여자 수에 있어서 가성비가 떨어진다. 주도하는 몇 명 외에는 다른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볼 기회가 적다. 더욱이 언제 교문이 다시 닫힐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두 번 하다 끝날 수도 있다.
하여 원격 수업과 관련된 주제를 제시한 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어보도록 했다. 예외 없이 모두 참여하고, 자필로 또박또박 쓸 것을 주문했다. 비록 40분 남짓의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거의 일주일 전 주제가 안내되어 나름의 주장이 머릿속에 정리돼 있을 것이라 여겼다.
글쓰기 과제물 한 뭉치를 들고 교실을 나오는 기분은 제법 쏠쏠하다. 수업 충실도와 아이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것보다 생기부 기록을 위한 자료를 확보했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주제에 대한 아이들의 답변과 교사의 견해 등을 버무리면서 생기부를 하나둘 채워나가게 된다.
교육의 근본적인 개혁 향해 시동 걸어주길
섣부른 기대였을까. 자신만의 주장이 담긴 글은 아예 찾아보기 힘들고, 내용상 앞뒤가 안 맞는 것들도 수두룩하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이 매우 낮은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보라고 했더니,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적은 아이가 여럿이다.
그런가 하면, '쩐다'거나 '지렸다', '맞장깠다'는 등 이른바 '급식체'를 그대로 쓴 경우도 있다. 설마 그걸 표준어로 믿진 않을 터. 구어체를 그대로 쓴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내용이라도 충실하면 괜찮을 텐데, 횡설수설 읽다 보면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귀찮다는 듯 한두 줄 쓰고 마는 아이도 적지 않다. 심지어 이런 예도 있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사례들 중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꼽고 그 이유를 밝히라고 했더니, 답변인즉슨 '없다'였다. 질문 두 줄에 답변 두 글자, 교사로서 힘이 빠진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아이들의 생기부는 하나같이 흠잡을 데 없다. 있는 그대로, 지켜본 그대로 적는다면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으려니와 시간도 그리 많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문을 일일이 바로잡고 어처구니없는 내용을 그럴듯하게 다듬자면 적잖은 시간과 공력이 든다.
솔직히, 교사로서 이게 할 짓인가 싶다. 오로지 대학이 선호하는 생기부를 만들기 위해 종일 컴퓨터 앞에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내 모습이 처량하다. 시간 낭비가 이만저만 아니다. 그럴 시간에 아이들과 한 번 더 만나고, 수업 준비하는 데 쓰는 편이 낫다는 자괴감이 든다.
새해 벽두부터 뜬금없이 생기부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코로나만 빼면 검찰 개혁이 유일하다시피 한 뉴스였다. 앙숙으로 싸웠던 추미애와 윤석열은 유치원생도 다 아는 이름이 됐다. 공수처 출범을 앞둔 마당에 머지않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다.
검찰 개혁을 외치며 작년 한 해를 다 보냈다면, 올해는? 개인적으로, 2021년 올해는 교육 개혁의 원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코로나 대응에 쇠약해진 교육부든, 존재감조차 흐릿해진 국가교육위원회든, 누구라도 좋으니 교육의 근본적인 개혁을 향해 시동을 걸어주길 소망한다.
교육 개혁이 이루어졌다면 애초 검찰이 저렇듯 기득권에 목맨 집단으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고 있다. 수능이냐 학종이냐를 두고 서로 으르렁대지 말고, 교육의 본령에 대해 성찰하는 토론의 장이 마련되길 바란다. 과한 욕심이라면, 적어도 대학 입시를 교육 개혁의 종착역으로 여기는 완고한 편견만이라도 깨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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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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