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아이들에게 채식을 권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 사이의 거리는 멀었다. 채식을 시작해보겠다는 경우가 더러 있긴 했지만, 얼마 못 가 대부분 뜻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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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을 시작하고 10년쯤 지났을 때다. 우연히 국어 교과서에 실린 법정 스님의 수필을 읽은 뒤, '채식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 좋은 걸 나만 하면 되나 싶은 생각도 있었고, 교과서에도 등장할 만큼 채식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무르익었다는 판단에서다.
법정 스님의 글은 소고기 1인분을 생산하기 위해서 30인분의 곡식이 필요하다는 요지였다. 지구는 모든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지만, 한 사람의 탐욕을 채워줄 수 없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일갈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었다. 채식주의자들이 실천의 당위로 삼는 구절이기도 하다.
수업 시간 짬을 내어 육류 소비의 증가와 아마존 밀림의 파괴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도 소개하곤 했다. 축산 폐수와 분뇨의 메탄가스가 환경 오염의 주범이라는 것도 각종 통계를 보여주며 공감을 얻으려 했다. 이따금 동물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하지만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 사이의 거리는 멀었다. 채식을 시작해보겠다는 경우가 더러 있긴 했지만, 얼마 못 가 대부분 뜻을 접었다. 어릴 적부터 육류와 가공식품에 길들어진 입맛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라도 고기를 먹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아이들이다.
얼마 전 한 아이는 채식을 실천하겠다는 옹골찬 다짐이 고작 반나절 만에 꺾였다며 멋쩍게 웃었다. 점심시간 급식소의 메뉴판을 보자마자 이내 포기하게 되더라고 했다. 그의 의지를 단박에 꺾은 점심 메뉴는 치킨 마요네즈 덮밥이었다. 핑계 삼아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개인의 의지만으로 채식을 실천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요. 육식 위주의 식습관을 멀리할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그는 당장 학교 급식소의 메뉴부터 문제 삼았다. 1년 365일 점심시간에 고기반찬이 하루도 빠지지 않는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채식을 권하는 건 하나 마나 한 이야기라고 했다. 불고기에 환호하는 친구들 옆에서 밥에 김치만 먹고 있으면 자칫 놀림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양교사도 할 말은 있다. 고기반찬을 내놓지 않으면 아이들은 아예 급식소 대신 매점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학부모들의 항의까지 빗발쳐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애초 가정에서 잘못 길들어진 식습관을 학교가 바로잡을 수 있는 방도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채식 메뉴를 별도로 제공해달라는 요구는 지금까지도 소리 없는 메아리 신세다. 극소수일지언정 알레르기나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이들과 채식을 실천하려는 이들을 배려해달라고 외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절대다수를 위해 극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식이었다.
가짓수를 늘려 채식 메뉴를 준비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채식하려는 이들만 먹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식판에 담게 돼 급식비가 인상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댄다. 채식주의자의 까탈스러운 식성을 위해 왜 내가 비용을 치러야 하느냐는 반발인 셈이다.
채식을 시작한 지 20년, '채식 전도사'를 자처한 지 10년 동안 홀로 힘겹게 싸웠으나, 급식소 메뉴의 일점일획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매일 같은 급식소를 사용하는 100명에 이르는 교직원 중 단 한 명도 함께 채식하자고 설득해내지 못했다. 이쯤에서 패배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20년 동안 이어온 채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미 일상이 된 마당에 고기를 먹는다는 건 이젠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단지, 식습관을 건드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등의 감정 소모를 그만두겠다는 뜻이다. 채식은 스스로 마음이 동해야 하는 일이다.
매일 급식소에서 내 텅 빈 식판으로 인해 불편을 끼쳤다면 이 글을 통해 정중히 사과한다. 주방 선생님들은 날 보며 한사코 미안해했고, 동료 교사들이 내심 불편해했음을 안다.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데, 급식비 환불을 요청하라는 이도 있었다. 그건 실은 조롱이었다.
나만의 방식으로
2021년 새해 첫 출근날, 다시 나만의 방식으로 채식을 실천하기로 다짐한다. 바쁜 아침이지만, 매일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 고기반찬으로 뒤덮인 급식소와 정든 식판과의 이별이다. 대학 기숙사와 군 복무까지 포함하면 30년 넘게 식판에다 밥을 먹었는데 서운한 마음도 있다.
모두가 급식소에 간 점심시간, 휴게실에 덩그러니 앉아 홀로 먹는 식사가 맛있을 리 없겠지만, 여기저기 눈치 안 보고 마음 편히 먹을 순 있을 것 같다. 급식소 메뉴는 못 바꿨지만, 아이들에게 채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건 계속된다.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으니 가르쳐야 한다.
사족 하나. 한 동료 교사에 대한 험담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그는 1년이 지난 지금도 마스크 쓰는 게 너무나 귀찮다고 한다. 입만 열면 대체 백신은 언제 나오냐며 정부의 무능을 질타한다. 또, 머그잔과 텀블러가 불편하다며 종이컵을 곁에 쌓아두고 사용한다. 그런가 하면, 고기반찬 없이는 밥을 먹은 것 같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는 과연 일회용품 사용과 육류 소비의 증가 등이 코로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걸까. 그의 앞에서 채식 이야기를 꺼내는 건 무망한 일이다. 기회가 되면 그에게 꼭 한번 물어보고 싶다. 세상이 저절로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지를. 명색이 그는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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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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