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의 다른 글 큰사진보기 ▲전주성의 정문(남문) 풍남문정만진 전주성은 어느새 '해방구'가 되었다. 호남의 수부이면서 조선왕조의 본관이기도 하는 전주성을 농민군이 장악한 것은 의미가 남달랐다. 일본인 연구가는 동학농민군의 전주성의 점령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전주 점거 동학군이 당당하게 전주성에 들어가자 성문은 열려 있었고, 방비하는 군사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감사 김문현은 사마(司馬) 최영년을 동반하고 한벽정(寒碧亭)에서 풍류음주를 즐기는 환락 중에 있었다. 전봉준 등이 감영에 들어가 세금을 부과하는 문서를 태워버리고 관리를 쫓아버리며 〈동학본영소〉라는 간판을 달 때까지도 전라도 감사 김문현은 술에서 깨어나지 않았고, 시인 매하산인(梅下山人)과 기생 향월(香月)의 손을 잡고 태평스러운 꿈을 꾸고 있었다. 동학 본영에서 감사는 길게 한숨을 짓고 전봉준은 사람을 시켜 감영의 인장을 김문현으로 하여금 바치게 하였다. ▲관군에 맞서 싸우고 있는 동학농민군들. 황룡전적지 기념탑에 새겨진 부조물이다.이돈삼 전주는 한 사람의 군사도 잃지 않고 고스란히 동학군의 손에 들어왔으며, 김문현은 여산으로 도망갔다. 동학군의 전주 점령 소식이 전해지자, 호남의 50여 군은 동학의 지배를 받기에 이르렀다. 김개남은 남원을 점거하였고, 김정현과 안승관은 수원에 다가갔으며 고석주는 홍천을 점거하였고, 김복용과 이희개는 목천 세성산을 공략하였다. 최한규는 유구리를 점령하였고, 정원준은 옥천을 함락하는 등 조선의 8도는 이미 동학군에게 점령되기에 이르렀다. 전주 함락의 보고가 경성에 도달하자, 경성 정부는 너무나 당황하여 인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홍계훈을 전라병사로 임명하여 강화의 병사 500명을 거느리고 전주의 동학군 토벌을 위해 급히 파견하였는데, 이 때가 4월 30일이었다. (주석 11) ▲SBS들라마 '녹두꽃' 한 장면죽창을 들고 진군하는 동학농민군추준우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함락한 것이다. 그야말로 무혈입성이었다.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쉽게 함락할 수 있었던 요인의 하나는 성안에 농민군 내응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전주성 뿐만 아니라 농민군이 점거한 지역마다 내응자가 많았다. 농민군이 그만큼 민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동학군이 남진하는 동안 홍계훈이 이를 뒤쫓아 남쪽으로 내려간 사이, 지휘부는 군사를 돌려 텅빈 전주성을 피 흘리지 않고 점령한 것이다. 동학지휘부의 용병술이 보통이 아님을 보여준다. 큰사진보기 ▲사랑채 앞에 세운 '갑오동학농민군집결지'라는 빗돌.장호철 김문현은 동학농민군이 밀려오자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처음에는 그나마 체통이 있어서 4인교를 타고 피신하다가 위급한 상황이 되자 4인교를 버리고 헤어진 옷과 짚신을 얻어 신고 피난민에 섞여 공주로 달아났다.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군은 본부를 선화당에 정하고 장수들에게 4대문을 굳게 지키게 하는 한편, 옥문을 열어 죄수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군기고의 무기를 거두고 관곡을 풀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 감사와 고위 관리들은 모두 도망가고 남은 자는 사령이나 관노들뿐이었다. 동학지휘부는 이들에게 동학에 입교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동학농민군 지휘부는 전주성을 점령하자 혁명군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상과 약탈을 일삼는 것을 염려하여 12개조의 군율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이를 어긴 자는 가차없이 처단하였다. -. 항복한 자는 대접을 받는다. -. 곤궁한 자는 구제한다. -. 탐학한 자는 몰아낸다. -. 순종하는 자는 경복한다. -. 도주하는 자는 쫓지 말라. -. 굶주린 자는 먹인다. -. 간교하고 교활한 자는 없애버린다. -. 가난한 자는 구해주라. -. 불충한 자는 없애버린다. -. 거역하는 자는 효유하라. -. 병자에게는 약을 준다. -. 불효자는 죽인다. (주석 12) 주석 11> 앞의 책, 178~179쪽. 12> 김윤식, 『속음청사(續陰晴史上)』, 국사편찬위원회, 131쪽, 1971.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동학혁명 #김개남장군 #동학혁명_김개남장군 추천6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10만인클럽 10만인클럽 회원 김삼웅 (solwar) 내방 구독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26세, 가족과 함께 만주 망명 구독하기 연재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다음글39화수구파 정부와 홍계훈 죄 물어 현재글38화해방구가 된 전주성 이전글37화동학군, 전주성 무혈 입성 추천 연재 최병성 리포트 사진에 담긴 진실...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 끝난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사과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날 서점은 눈물바다가 됐다 난 늙을 줄 몰랐다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어쩌면 우리의 장례이야기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SNS 인기콘텐츠 "끝내자 윤건희, 용산방송 거부" 울먹인 KBS 직원들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무인기 사태 후 파주 읍내에 중무장 군인들 깔렸다"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용산 '친오빠 해명'에 야권 "친오빠면 더 치명적 국정농단"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AD AD AD 인기기사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 일본군이 경복궁 뒤뜰에 버린 명량대첩비가 있는 곳 5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해방구가 된 전주성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이 연재의 다른 글 40화봉기 한 달 만에 전주성 점령했으나 39화수구파 정부와 홍계훈 죄 물어 38화해방구가 된 전주성 37화동학군, 전주성 무혈 입성 36화동학농민군, '장태'라는 방탄차 개발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