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윤상원 열사와 영혼의 부부가 된 박기순 열사
5.18 기념재단
대변인 윤상원은 새로 구성된 '민주투쟁위원회'의 입장과 계엄분소와의 협상결과, 피해상황 등을 간략히 브리핑했다.
외신 기자들에게 특별히 두가지 사항을 협조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와 연결해달라는 것과 국제적십자사에 구호를 요청해달라는 것이었다. 윤상원은 "우리가 오늘 설령 진다고 해도 영원히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로 회견을 마무리했다.
3시간 동안 통역한 인요한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인요한이 그때 느낀 광주 분위기는 '폭도의 도시'가 아니라 '마치 거대한 장례식장' 같았다. 인요한은 윤상원이 그때 한 말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북쪽을 향해야 할 군인들의 총이 왜 남쪽을 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상황이 어렵다. 식량이 떨어져가고 있고, 물도 바닥나고……우리는 빨갱이가 아니다. 우리는 매일 '반공 구호'를 외치고 시작한다. 그렇게 몰고 가지 마라. 억울하다." (주석 17)
기자회견을 했던 윤상원은 몇 시간 뒤 계엄군의 집중 총탄에 목숨을 빼앗겼다. 이날 윤상원의 회견장에 나왔던 『볼티모어 선』의 블레들리 마틴 기자는 이렇게 썼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흔치 않은 곱슬머리였다. 그의 행동은 자신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무장 동료들의 거의 광란 상태에 이른 것 같은 허둥거림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침착함이 있었다. 그 침착함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그가 죽고 말 것이라는 예감을 뚜렷하게 받았다. 그의 눈길은 부드러웠으나 운명에 대한 체념과 결단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됐다. 그는 나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거의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주석 18)
26일 밤이 저물고 있었다. 도청 안에는 2~3백여 명이 머물면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임의 시각에 맞섰다.
"밤 9시쯤 학생과 일반수습위원 11명은 계엄분소를 방문하고 오늘 밤 진입을 하지 말아달라는 등 협상을 벌였으나 계엄분소측은 ①무장해제 ②무기반납 ③경찰의 치안회복 등 3개항을 일방적으로 통고한 후 12시까지가 시한이라고 못 박으며 이것이 '최후통첩'이라면서 다음 날 무력진압을 강력히 시사했다." (주석 19)
도청 안은 더욱 소연해졌다. 퇴각이냐 옥쇄냐, 마지막 갈림길의 선택만이 주어졌다. 항전 지도부에서는 끝까지 남아 있는 고등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뜻을 모았다. 이때에 윤상원의 모습을 소개한다.
우선 대열에 끼어 있는 어린 고등학생들에게 귀가를 설득했다.
"고등학생들은 나가라. 우리가 싸울테니 너희들은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들은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고등학생들 몇이 시무룩한 모습으로 대열을 빠져나갔다. 상원은 다시 목청에 힘을 돋구었다.
"여러분! 총 쏠 수 있습니까?"
"예!"
얼마 전과는 달리 우렁찬 함성 소리가 도청 안의 어둠을 흔들었다.
"여러분! 드디어 전두환 살인집단은 이 시각 현재 우리를 죽이기 위해 탱크를 앞세워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야수와도 같이 야음을 틈타 침공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냥 도청을 비워줘야 됩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저들에 맞서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냥 도청을 비워주게 되면 우리가 싸워온 그동안의 투쟁은 헛수고가 되고, 수없이 죽어간 영령들과 역사 앞에 죄인이 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투쟁에 임합시다. 우리가 비록 저들의 총탄에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뭉쳐 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불의에 대항하여 끝까지 싸웠다는 자랑스런 기록을 남깁시다. 이 새벽을 넘기면 기필코 아침이 옵니다." (주석 20)
주석
17> 황석영 외, 앞의 책, 390쪽.
18> 『5ㆍ18 특파원 리포트』, 133쪽.
19> 김영택, 앞의 책, 238쪽.
20> 전남사회문제연구소 편, 『윤상원평전:들불의 초상』, 120~121쪽, 풀빛,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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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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