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최후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및 분수대 광장과 전일빌딩(왼쪽 큰 건물). 전일빌딩은 계엄군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 5.18항쟁 역사의 현장이다.
권우성
'죽음의 행진'을 이끌었던 김성용 신부의 증언을 더 들어보자.
검은 세단차에 탄 장군이 나타난다. 두 개의 별이 빛난다. 부관들을 대동하고 나타나 장군은 부끄러운지 계엄사령부에 가서 이야기하자 한다. 행진중 대변인으로 선택된 나는 단호히 말했다.
군이 어젯밤의 위치에 후퇴하지 않는한 갈 수 없다. 장군은 후퇴하겠다고 말하고 전차병에게 명령하자 전차는 소음을 내면서 사라졌다. 시민은 일제히 박수의 세례를 보냈다.
부사령관 김소장의 제의를 받아들여 학생대표를 포함 11인이 상무대로 갔다. 서로 인사를 교환하고 자리에 앉으니 오전 10시가 되었다. 대변인으로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김소장은 이야기를 막고 30분간만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
준장이 2인, 소장이 2인, 그리고 중령인 헌병대장의 순서로 앉고 그 옆에 내가 앉게 되었다. 나는 항의했다. 대화라는 것은 대등한 입장에서 이야기해야 하지 않느냐. 그렇게 일방적으로 위협하고 이야기를 중단시키고 시간을 제한하면 어떻게 대화가 되는가고, 약속을 위반하고 전차를 이동케 한 데 대한 항의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결의를 말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신부가 여기에 왔으니 진심으로 이 이상 귀중한 피를 흘리지 않고 수습될 것을 요청, 이 일은 전 광주시민뿐 아니라 국가적인 일이니 이렇게 신부도 수습위에 참가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말은 통하지 않았다. 교묘히 나의 말을 왜곡하고 유도하면서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주석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