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시민을 도청 앞 분수대로 운구하는 시위대(1980)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시민을 도청 앞 분수대로 운구하는 시위대(1980)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신군부는 "27일 00:01 이후 진입작전을 실시한다"는 「상무충정작전 지침」을 이희성 계엄사령관 명의로 전교사에 하달했다. 극비리에 진행된 '소탕작전' 명령이었다.
이러한 지침을 받은 소준열 전교사령관은 26일 오전 10시 30분 3, 7, 11공수여단장과 보병학교, 포병학교, 기갑학교장 등을 불러 소탕작전에 관한 지휘관회의를 열었다. 물론 31사단장 정웅 소장은 회의에 참석시키지 않았다.
소준열 전교사령관은 정호용 특전사령관으로부터 도청진압의 선봉부대로 3공수여단 특공조를 추천받는 등 공수부대를 주력으로 하는 진압작전을 계획했다.
도청, 전일빌딩, YWCA, 광주공원 등 시민군 주요거점은 모두 공수부대 특공조에게 맡겨졌고, 20사단은 그 뒤를 따라 공수부대 특공조가 목표를 장악하는 즉시 이를 인계받아 시 전역을 점령하는 임무를 맡았다. 전교사 예하 각 학교 병력에게는 시 외곽을 봉쇄하는 임무가, 그리고 31사단에게는 광주시 북부 일부지역을 점령하나는 지시가 내렸다. 3여단 특공조를 비롯한 공수부대 병력은 26일 오후부터 비행장 격납고에서 진압작전 리허설을 시작했다. (주석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