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는 장 보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육아하는 집안의 전반적인 일을 내가 맡지만 주말에는 남편과 함께하고, 함께 쉰다. 나만의 '주부 월차제'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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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족을 위해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던 내 삶을 내려놓았다. 경제력을 잃고, 수많은 기회도 잃었다. 그저 옳은 일이라는 신념 하나로 아이들의 성장을 도우며 살았다.
하루하루 나의 자아를 누르고 엄마라는 무게를 견디며 사는 것도 버거운데, 불평등한 관계까지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돌봄을 선택했던 내 판단을 이렇게 후회로 남길 순 없는 일. 상호 존중하는 동등한 부부로 살아가기 위해 전략이 필요했다. 돈 버는 유세에 맞서 '돌보는 유세'를 시작했다.
어느 날 집으로 우편물 하나가 날아왔다. 남편의 '국민연금 적립금' 안내서다. 제법 목돈이었다. '남편은 계속 노동하고 있다는 게 이렇게 증명되는구나.' 남편의 노동은 미래의 돈으로 쌓였다.
나도 회사에 다닐 때는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었지만 전업주부가 되면서 납부를 멈췄기에, 나와 남편의 적립금은 상당히 큰 차이가 났다. 마치 내가 국민연금 납부를 멈춘 시점부터 노동을 하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전업주부로 애 둘을 키우는 노동의 강도는 회사 일보다 훨씬 더 힘들고, 다양하고, 복잡했지만, 그 어디서도 나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업주부=팔자 좋은 사람=노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몇몇 지인은 내게 "언제까지 놀 거야?"라고 질문하곤 했다. 심지어 엄마들끼리도 그런 표현에 익숙하다.
나는 팔자가 좋지도 않고, 놀지도 않으며, 정말 열심히 일하며 사는데, 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할까? 사회에서 인정하거나 말거나 스스로 노동자가 되리라는 오기가 생겼다. 국민연금 지역가입자로 등록해서 매달 일정 금액을 납부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매달 차곡차곡 쌓이는 국민연금을 보는 것만으로도 노동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매달 생활비가 부족한 형편이었지만 무리해서라도 국민연금을 넣었다. 남편의 국민연금이 생활비와 상관없이 고정적으로 나가듯 내 것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이 부족해서 못하는 것이 생겨야 한다면 외식이나 여행처럼 가족 모두가 누리는 다른 지출이어야 한다.
이외에도 나는 연중무휴 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우선 '주5일 근무'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평일에는 장 보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육아하는 집안의 전반적인 일을 내가 맡지만 주말에는 남편과 함께 하고, 함께 쉰다. 나만의 '주부 월차제'를 만들기도 했다.
한 달에 이틀은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내 일터인 집을 떠난다. 올해는 첫 번째, 세 번째 토요일을 나의 휴가로 정했다. 남편의 눈치를 보면서 허락을 받고 나가는 것과 당연히 쉬는 날인 것은 다르다. 한 달에 단 이틀이라도 집안일과 육아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
내가 남편의 임금노동에 빚이 있다면, 남편은 내 돌봄노동에 빚이 있다. 남편은 내 돌봄노동을 바탕으로 애가 아프거나 말거나, 방학을 하거나 말거나 걱정 없이 일에 집중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나에게 남편의 임금노동이 필요하듯, 남편에겐 내 돌봄노동이 필요하다. 서로의 노동이 절실하다. 남편이 없으면 나와 아이들의 삶이 위태롭듯, 내가 없으면 남편과 아이들의 삶이 위태로워진다. 내가 하는 역할은 남편의 역할만큼 중요하다.
남편이 벌어오는 임금에는 내 돌봄노동이 숨어 있다. 남편 혼자 돈 버는 노고를 인정받는 건 부당하다. 남편의 성취는 나의 희생을 기반에 두고 있다. 남편이 버는 돈으로 내가 편하게 산다고 하지만 사실은 내가 하는 돌봄노동 덕분에 남편이 안정적으로 일하며 자신의 가치를 올린 것이다. 남편이 버는 돈의 절반은 정당한 내 몫이다.
"내가 하는 노동의 가치는 내가 정해. 백지수표야. 유급노동과 무급노동으로 보지 말고 임금노동과 돌봄노동이라고 생각해. 우린 지금 외벌이가 아니라 '맞노동'을 하고 있다고!"
"우리 집 기둥은 엄마야" 6년 투쟁의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