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부엌에서 조리를 시작하고 한 시간이 지나면 우리 부부는 이런 밥상을 받았다
조슬기
나는 남편과 엄마 두 사람에게 이것저것 잘 시켰다. '물 좀 줘', '화장실 가니까 아기 잠깐 안아줘', '기저귀 좀 갈아줘'.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페미니즘 글쓰기 모임 시간, 다른 엄마들의 아우성이 빗발친다.
"그걸 왜 친정엄마 시켜요?"
"착취 아니에요?"
"돈 드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전일제면 한 달 최소 이삼백만 원인데."
"이제 오시지 말라고 해요."
쭉 듣던 내 입에서 한 마디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엄마 없으면 안 돼요!"
내 말이 부끄러웠지만, 생각해 보면 오래 전부터 우리 집은 엄마 없이 일이 안 돌아갔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30년 전 그때부터.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동네 재봉사로 취직했다. 일을 다니면서도 점심시간이면 꼬박꼬박 내 밥을 차려줬다. 손녀가 태어나기 전까지 그렇게 20년간 직장 일과 육아, 가사노동을 해온 엄마는 딸인 내가 좀 컸을 때 설거지를 처음 시키려 했다.
"오빠는 안 하는데 왜 나만 해?" 볼멘소리가 나오자, 아빠도 오빠도 나도 안 하는 집안일을 엄마가 하던 대로 혼자 다 했다.
너도 네 엄마 같은 엄마가 되겠지
엄마에 대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첫 댓글이 달렸다.
"너도 네 엄마 같은 엄마가 되겠지ㅎㅎ"
뭐라고? 내가 바랐던 반응은 이게 아닌데. 그 다음 댓글은 동료 아기 엄마.
"육아하는 1순위는 엄마, 그 다음은 친정엄마, 그 다음은 시어머니, 그 다음은 어린이집 여교사. 세상이 여자들 돌봄 없이 돌아갈까 싶네요."
혼란스러웠다. 처음에는 글쓰기 모임 사람들의 말처럼 '엄마가 너무 희생하고 있다, 이건 맞지 않다'며 남편에게 화냈다. 싸움이 늘자 그는 말했다.
"내가 오시라고 한 거냐고! 어머니 이제 오시지 말라고 해."
"그럼? 엄마 안 오면 집에 냉장고에 뭐가 있는데? 자기가 먹을 거 안 만들어 놓잖아! 나는 굶어야 돼 그럼!"
남편은 전보다 설거지를 자주 했고, 나도 산후 백일이 지나며 집안일에 손을 보탰다. 아기 200일, 300일이 되는 동안 엄마의 발길은 뜸해졌다. 우리 노력 때문이 아니었다. 첫째 손녀가 방학이었고, 또 감기였다.
엄마가 우리 집 부엌에 있을 때 묘한 죄책감을 느꼈는데, 반대로 억울한 마음도 늘어갔다. 출산하고 아기 돌보느라 손목, 손가락 관절, 족저근막염인 발 등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육아로 삶이 파탄 난 내가 지상 최대 피해자 같은데, 가해자라니. 외치고 싶었다.
"친정엄마 도움받는 게 그렇게 잘못이에요?"
처음에는 남편 때문에 엄마가 우리 집에서 힘들게 일한다 생각했다. 20년간 자기 엄마에게서 밥, 빨래, 청소 서비스를 당연하게 받아온 것처럼 내 엄마에게도 똑같이 군다고. 내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에 숟가락도 안 놓고 행주질도 안 한다고. 그 쉬운 것조차 안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남편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내가 육아로 못하는 가사의 대부분, 제 할 일을 해야 한다 여겼다.
페미니즘 글쓰기 모임에 나간 후, 남편만 가리키던 손가락을 안으로 돌려 이제 나를 봐야 했다. 한 친구가 집에 놀러왔을 때, 나는 솔직하게 털어놨다. 아이를 낳고 집에 온 후 몇 달간 남편에게 자주 화내고 소리쳤다고.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고.
"아니, 옆에서 내가 어떻게 사는지 보면서도 그렇게 몰라? 정말 눈물 나! 그런데, 내가 남편을 어떻게 이해하게 됐는지 알아? 내가 그랬더라고. 우리 엄마랑 삼십 몇 년 살면서도 엄마 힘든 걸 몰랐더라고. 눈앞에서 보면서."
언제쯤 이 이야기가 끝날까요